"아이고"를 I GO!(for shovelling)로 힘내어 눈을 치우고 들어와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조선형의 <한 겨울 양지에 핀 물망초>의 글이 힘발을 세웠습니다.
그의 산문에서 일부를 골라 싣습니다. 계속내리는 눈에 반비례하는 경제로 우울한 마음에 물망초 같이 활짝 피어지기를 바랍니다.
********************************************************
나무는 옷을 벗고 바람을 피하며,
개나리는 꽃봉오리 다물어 추위를 이긴다.
수선화, 다알리아, 글라디올러스는 잠을 자는데,
벌도 나비도 찾아 주지 않는 겨울에,
너만이 양지에 홀로 꽃을 피우고 있구나
작은 흰 꽃들이 힘겹게 매달려 있는,
보잘것없는 너의 귀여움이 아름답다.
겨울 추위 마다하고 네가 해야 할 일
멋지게 피어 있는 추위속의 꽃,
아름다운 것은 너처럼 인내 하는 것
나는 겨울 양지에 피어있는 이 물망초를 볼 때마다, 내가 지나온 날을 생각 한다. 6.25 전쟁이 앗아간 서울, 청계천을 덮느냐 마느냐 논쟁을 하던 50년대 후반에 미국에 왔다. 문교부에서 알선해 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가방하나 들고 돈도 없이 미국에 왔다. 전쟁에 가족 다 잃고, 새 나라에서 새 삶을 개척 한다는 야심과 혈기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두드려라 열어 주실 것이다”라는 성경 글귀를 가슴 깊이 새기고 미국에 왔다. 그러나 내가온 미국은 무척 힘든 곳이었다. 마치 겨울에 피어야 할 저 물망초 같았다.
외국어 대학 영어과에서 늘 외국인 교수 영어 강의를 듣고, 영어로 쓰고, 영어로 발표 하면서 나는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 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미국 대학에 편입 했다. 영시 시간에 교수가 시를 읊으며, 학생들에게 감상을 말 해보라고 했다. 시 감상문, 시 평론 등의 숙제를 받을 때 마다 쩔쩔 맸다. 결국 나는 ‘D’ 학점을 받았다.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외국어대학에 들어간 나였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는 수학, 통계, 회계학 같은, 영어를 많이 사용 하지 않는 과목에선 두각을 나타냈다. 나는 영어를 피해, 대학원에서는 주로 수리분석과 공학에 관한 과목을 택했고, 결국 전산과 교육통계로 최종 학위를 받았다.
둘째로 힘든 도전은 돈벌이 이었다. 나는 고학을 해야 했었다. 1960년 1월, 눈이 많이 온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 필라델피아 시내 중심에 있는 높은 건을 찾아,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일자리를 구했다. 결국 한 독지가와 연결되어 그분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몇 달 후에는, 그 변호사 아들이 창업한 증권투자회사에 취직했다. 그 증권사에서 컴퓨터를 도입했다. 나는 컴퓨터 기계를 작동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우게 되었다. 60년대 초 컴퓨터를 별로 사용 하지 않을 때였다.
세 번째 미국 생활의 도전은 인종차별 이었다. 방을 구하려고 하면, 얼굴을 맞대고 ‘중국인’에겐 방을 빌려 주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다.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유색 인종이 모여 사는 동리, 유색인종이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소수계 인종이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미국 와서 내가 삶의 터전을 이루는데 장애요소는 크게 세 가지 이었다. 영어, 돈, 인종차별. 나는 이 장애를 역이용 했다. 컴퓨터 기술로 취직은 쉽게 되었고,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해 인종차별을 선전 효과로 이용 했다. 고학 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30대 초반에 전산실장이 되었다. 관리직을 맡은 후에는 기술보다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communication)능력이었다. 메모를 쓰려면 비서에게 속기를 시켜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인 연설(impromptu speech)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예산신청 설명, 공청회 같은 데서는 내 계획, 내 생각을 표현 하고 답변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피해 오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결국 의사소통의 장애도 극복하면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 수 있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당면했던 장애가 내게는 오히려 힘이 되었다. 비록 저 겨울에 피어 있는 물망초처럼, 박수를 쳐주는 벌과 나비는 없었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 수 있었다.
오늘 오후에는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기 부양책에 관한 연설이 있었다. 미국 경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부양책을 제시하는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지난 2008년 한 해에만 미국증시에서 무려 7조(trillion) 달러를 잃었고, 실업자는 늘어나 7.2%에 육박하고, 10%에 근접할 것이라고 한다. 소비는 급격히 줄며 자동차 판매는 40~50%, 두 자릿수의 매상이 격감되었다 한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이런 불황을 헤쳐 나갈 과감한 대책을 제시했다. 취임식이 2주일이나 남아 있는데도 대통령의 품위와 풍채를 갖고 국민들 앞에 나와 그의 경제 부양책을 설명했다. 미국 입법부는 부양책을 통과시켜 자신이 대통령 직무를 시작할 때 즉시 경제재건을 추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호소였다. 규모는 8000억 달러, 여기에는 세금감세분 3000억 달러 포함 되어 있다. 우선 중산층과 중소기업의 세금을 줄여 즉각적인 경기부양의 효과를 보고, 나머지 5000억 달러는 도로공사, 지능송전망(smart grid) 건설, 대체에너지 개발 같은 경제혁신 프로젝트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는 독특한 의사소통(communication) 능력을 갖고 있다. 싫은 말도 듣기 편안 하고, 듣는 자로부터 감동을 받게 한다. 그 많은 난제의 설명을 실망으로 이끌지 않고, 그 난제를 헤쳐 나가는 해법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그의 말을 듣고 나면 겨울철 양지에 피어 있는 물망초처럼, 추운 바람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009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