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2일
성경:
출애굽기 33:12-23
설교:
내가 친히 가리라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것과 그것을
무시하고 나 홀로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걱정과 근심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경험하며 살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매주 교회에 나오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홀로 있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모여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더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훈련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훈련입니다.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가 무엇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독교의 묵상은 그저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는 묵상입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은 비우는
것이고, 채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홀로 두려움 속에서, 또한 외로움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그의 임재를 허락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홀로 있지 않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면서도 이런 약속을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그러니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으로 끝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장에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왔다는
것을 설명하고 마지막 장인 28장 마지막 절에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임재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어야 합니다. 하루가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임재로 끝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이 경험하고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홀로 이겨나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능력으로 이겨나간 것이 아닙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은 의식하며
어려운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음식이 다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허락하시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물이 떨어져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허락하여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섭고 험난한 광야에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었을 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그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공허함을 탐심으로 채우고, 거짓된 것으로 채웁니다. 거짓된 신으로 채웁니다.
그것이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전 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출애굽기 32:23, 24)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니,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임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막 만들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스스로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지요.
때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일이 꼬이고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욥이
삶의 심한 고통을 겪을 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기 23:8, 9)
그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돈이 우리의 금송아지가 될 수 있고, 나의 능력이 우리의 금송아지가 될 수 있고, 내가 지금 누리는 건강이 우리의
금송아지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금송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조금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금송아지가
그 어려운 광야의 여정을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따라 갔다가는 그들은 거기서 다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금송아지가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잘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모세가 중보를 하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애굽기 33:12, 13)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애굽기 33:15)
주의
임재를 구하는 모세의 간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시고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그리고 끝에
무엇보다도 이 족속을 다시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모세는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지만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시고 주의 임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처음 그들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그 임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은혜와 자비의 임재를 그들에게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모세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애굽기
33:14)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받아 들이고, 그들을 용서하고, 이제 그들과 함께 가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33:19)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분만 있으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양의 가사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를 찬양해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지금
저희는 바울의 눈을 통하여 나타난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바울이 경험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족하다. 충분하다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바울에게 이 족하다 라는 깨달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린도후서 12:9)
하나님의
임재만 우리가 갖고 산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어떤 것도 견뎌나갈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견뎌나갈 수 있고, 마실 물이 없어도 견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 다 필요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바울은 사는 것도 좋고 죽는 것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을텐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를 거두어 가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경험이 너무
강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내가 너무 자신의 실패 때문에 괴로워 할 때에, 내가 너무 욕심에
빠져 있을 때, 내가 너무 고통 때문에 아파 할 때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분을 이기지 못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가자에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스스로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때 금송아지를 만들지 마십시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다른 것 없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나와 그의 자비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로 여러분을 감싸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존재를 감싸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간단합니다. 대단한 일을 하시는 것을 원하시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저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친구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이유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1절 전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애굽기
33:11)
오늘
본문에서도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출애굽기 33:17)
모세를
이름으로 안다라는 말은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세에게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어린아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보잘것 없으면 보잘것 없는대로, 못났으면 못난 모습대로,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을 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임재를 허락하시고, 그의 영광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며, 우리를 통하여 우리가 상상치도 못하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아주 가까이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3:20-23)
하나님의
임재라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임재라고 하는
것이 손으로 만지듯이,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해를 맨눈으로 보면 아주 위험합니다. Solar Retinopathy, 태양 망막증 망막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신비함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연히 여길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느껴지면 감사하고, 느껴지지 않으면 구하십시오. 늘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가는 길에 같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