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하신 일의 의미와 그것이 바울의 사도직에 미친 영향
성경: 갈라디아서 1장 1-5절
1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우선, 사도는 원어로 “apostolos”라고 하며 그 원래의 뜻은 보냄을 받은 자로써 delegate, envoy혹은 messenger로 번역이 된다. 원래의 뜻은 특별한 사명을 받아 주어진 기간 동안에 자기를 보낸 그룹의 뜻을 전하고 대표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처럼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평생직으로 사용되었다.
어떻게 보면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사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방어적인투로 말을 하는것 같다. 갈라디아교회에 내려와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은 바울이 스스로 사도라고 자칭하며 다니며 제대로된 메세지를 전하지 않고 있다라는 도전을 받고 있었던 때이다. 그들의 말처럼 바울은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언급을 이해하려면 먼저 4절을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의 사도직은 바울의 구원론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 하나님 곧 아버지의 뜻을 따라
2.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3.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란 말은 그가 하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같다란 것을 의미한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보통 종교의식과 어떻게 다른가?
보통 종교의식에서는 인간이 신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이 두려워서, 신께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리면서 신께 빌어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본문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스스로에게 제사를 드린다 라는 아주 획기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사의 의미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처벌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그 저주와 벌을 피하려고 한다. 인간을 묶어두는 것은 하나님의 벌과 저주며,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은 하나님의 벌과 저주에서 풀려나는 것이였다.
그런데 4절에서 바울은 우리를 묶어두는 것이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처벌이 아니라 이 악한 세대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드리신 것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악한 세대, the present evil age로부터 우리를 잡아채어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이 악한 세대인 것이다. 이 악한 세대는 우리를 묶어두고, 우리의 생각을 묶어두고,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가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끝임없이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다. 갈수로 더욱 매이게 하며, 허무함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이 악한세대에 묶여 신음하고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뭔가를 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그 악한세대에서 구원해 내는 것이였다.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신 것과 같다.
갈라디아서 당시의 사람들은 지난주에서 본 것과 같이 로마라고 하는 엄청난 파워에 지배받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힘의 세력은 너무 강하고 그 유혹이 너무 달콤하고 appeal하기 때문에, 금새 모든 것을 그의 생각으로 흡수해 버린다. 바울은 인간이 그런 세상의 권세와 파워에 묶여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애굽을 지배했던 권세와 로마를 통하여 지배의 세력을 펼쳐나가고 있는 권세는 다 바로 the present evil age가 사용하고 있는 매개체이다. 그때는 애굽, 바울 당시에는 로마,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서도 여러 모양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손아귀에서 유대교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바울은 보았다.
The present evil age는 눈에 보이는 권세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형성이 되어 하나님을 대항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대항하며, 인간의 욕심과 허영을 실천하는 힘의 세력을 말하고 있다. 한 인간(아담)의 죄로 시작한 이 잘못이 퍼져나가 모여 큰 세력을 구축했다. 그 세력이 인간을 짓누르며 기쁨을 앗아가고, 평화를 앗아가고, 화해와 일치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파괴와 폭력, 차별과 분열, 거짓과 허영으로 인간을 몰고 갔다. 더 나아가 스스로 의롭다고 그 세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수록 인간은 그 세력과 합하여 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오염된 이 세상과 인간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 세상을 뚫고 들어오신 것이다. God’s invasion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이다.
십자가 사건은 이 땅이 얼마나 오염되었는가를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을 온전히 십자가에 달려 죽게한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오염된 모습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this present evil age는 이기지 못했다. 무엇이 이것을 증명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하나님의 invasion이였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드린, 우리를 성화시키기위해 드리신 하나님의 제사였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계시로 (1장 12, 16절) 드러난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가 Apocalypse: 드러내다, 밝히다 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다. 바울은 자신이 악한 세대에 묶여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강권적으로 마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임했던 것처럼 바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임했던 것이다. 자기의 종교성으로,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의로 이루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그것들로는 악한 세대의 묶임에서 자유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 온 선생들이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라, 율법을 지켜라, 하는 가르침은 바울에게는 또다시 인간의 생각으로 눈을 멀게 하는 것이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바울에게는 이것이 복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 믿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해 볼때 바울는 자신이 받은 사도직은 어떤 인간의 말이나 인간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1절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1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변명을 하거나 교회의 질서나 권위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깨닫고 그것을 갈라디아인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비록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을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예언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죄를 어떤 도덕적인 실수나 종교심의 결여로 보는 경향이 높다. 그러나 바울은 죄를 더 근본적으로 우리를 묶어놓는 힘이라고 보았다.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욕심, 이기심, 교만, 허영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묶고 있는 죄는 어떤것인가?
어떻게 이 죄에서 해방될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은 벌써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공부 요약은 윤지영 목사께서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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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 영상의 음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13분까지는 오디오 입력 연결선이 빠져 있어 카메라 내장 마이크로 녹음이 되었습니다.
다시 연결하였으나 오디오 시스템에 Plate Effect가 걸려있어서 33분정도까지 음성의 울림현상이 계속됩니다.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