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에서
여름철 밤나무와 허물없게 지냈다
하얀 꽃 피워 춤추는 향기 날리고
밤송이에 알이 들면 연두빛 송이는
내 손이 간지럽게 친했다.
가을철 밤나무는 무정하게 달랐다
흰옷 벌려 웃어 반가히 갔는데
내 발에 가시로 피를 내며 하는말,
“네 손을 내 몸에 대지 말라!”
어렸을 때는 친구관계가 서로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얼마 전 두 살이 채 되기 전 귀여운 어린 손녀를 쓰다듬고 안아
주었는데 아, 놀랍게도 만지는 것을 싫어하고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 도아주면 마구 화내면서 뿌리쳤습니다. "어, 놀랍게 변했네!...."
지금은 성장 속도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옛 우리는 지금의 어린아이 때면 글자 이해
나 몸짓을 엄두도 못내는 그런 것들을 거침 없이 해 낸 요즈음의 아이들을 보면 참, 참
변화가 무척이나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저녁, 선덕여왕 드마라에 김춘추역으로
출연한 배우를 보고서도 그랬습니다.
2002년 경에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라는 영화의 아역이면서 주연이었던 당시 7세 정
도였던 어린 유승호와 얼굴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이름을 확인해 보니 바로 같은 인
물이었습니다.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실감되었습니다. 이제 유승호를 “그 아이”라고
했다가는 조선시대사람이 왔다고 놀림받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의 몸과 부활의 몸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어떻게 얼마나 달라
지셨는지 모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반가히 맞아 손을 대려했
는데 “나를 만지지 말라" 하셨습니다(요20:17). 누가복음에서 마리아가 손으로 예수님의
발을 만진 것으로 나왔지만 몸은 아니었던 것같습니다."예수님이 왜 못만지게 하셨을까?"
부활하신 새 몸이신 예수님은 부활 전의 예수님과 인간관계에서 다름을 나타낸 것으로
주석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셨지만 touch
한 장면은 보이지 않했습니다. 먼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셔서 아버지로 부터 예수님
과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실 계획을 먼저 들으셔야 하셨던 것같습니다.
가을의 밤송이는 갈색으로 된 굳은 날카로운 가시어서 손이 찔리어 상처받기 쉽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밤송이 같은 비유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이제 다른 몸이셨습니다. 아마도 죄를 가진 우리 육체가 영광의 예수님의 몸에 직접
닿으면 손상을 받기 때문이 아니었는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9월 26일에 한국 공주 문예관에서 공주알밤 가공상품 품평회를 가졌는데 많은 상품
이 개발된 것이 소개되었습니다. 과자, 기타 알밤개발상품이 전시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알밤에 초코렛을 덧 입힌 초코밤이었습니다. 초코와 밤의 만남은 위리에게 과거의 밤이
아닌 아주 새로운 밤으로(아직 먹어 보진 않했지만) 우리와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서 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서 성령을 우리 인간에게 보내주심으로 새로운 개인과 교
회 관계를 가지셨다는 것과 연결 되었습니다. 옛 생밤, 군밤, 삶은 밤이 아닌 초코를 입힌
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늘 떠나지 않고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셨던 것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지금은 2000 여년 전에 지상에 오셨던 그런 예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아주 새롭
게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 속에 들어 오셔서 우리와 언제나 동행동거하신다는 것을 확신
케 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관계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생활인 REALITY이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런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끊을 수 없는 귀한 관계
를 세상 끝날 때까지 지속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