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1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톡,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가을의 향기
남쪽에선 과수원에 능금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산 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傷)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김현승·시인, 1913-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