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일 년 동안 이병호 국정원장의 변호를 하면서 내 자신이 많은 영혼의 변화를 이룬 것 같다. 그를 변호하게 된 동기는 간단히 떠오르는 한 장면이었다. 나의 사무실 앞 길거리에서 절망한 모습으로 망연히 하늘을 보던 그의 힘빠진 뒷모습이었다. 그때 판사는 퇴직금을 사기당한 그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얼음같이 찬 판결을 내렸다. 그의 지능이 그런 사기를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판사의 추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소송을 하면서 그가 사기를 당할 만큼 순수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어떤 존재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75세의 나이에 국정원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내게 어떤 섭리가 자신을 그 나이에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권력의 개가 되어 양들을 몰아칠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사는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청빈한 사람이었다. 재물을 탐내는 성격도 아니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그 나이에 권력이나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왜 국정원장이 되었을까 나는 궁금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그가 뇌물죄와 정치관여죄로 징역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됐다는 보도를 봤다. 그 순간 느껴졌다. 그는 이 나라가 적폐를 청산하고 보다 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로 가기 위한 법의 제단에 속죄양으로 바쳐지기 위해 그 자리에 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속죄양은 흠이 없는 깨끗한 제물이어야 했다. 십자가를 진 예수가 인간을 위한 그런 속죄양이었다. 이미 나이 80의 쇠약한 노인이 된 그는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 힘들어 했다.
나는 성경 속에 나오는 구레네의 시몬이라고 하면서 사형집행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그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동행한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가 대신 떠안은 세상 죄를 옆에서 세밀하게 보았다. 국민적 감시가 힘든 정보기관에 혈세를 숨겨놓고 권력가들이 수십 년 동안 그 돈을 써 왔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그 돈은 그늘에서 독이 되었다. 국정원의 돈은 그곳에 맡겨진 정치권력의 돈이라는 인식이 화석같이 굳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재벌로부터 받은 자신의 뇌물을 정보기관장에게 맡겨 은밀히 증식시켰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원 기조실장을 통해 자신의 자금을 은밀히 관리시키면서 총선 때 선거자금으로 대기도 했다.
시대정신이 이런 적폐에 대해 철퇴를 내린 것이다. 다른 대통령들도 불법적인 돈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중 새가슴처럼 가장 작은 액수의 돈에 관여된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국정원에서 보내는 돈이 어떤 것이라는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었다. 수준 낮은 비서관과 최순실의 무식한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결국 대통령은 아무런 의식이 없는 여왕마네킹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 여왕인형 속에 아픔과 위기에 대한 정서적 공감능력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여왕의 편린을 보면서 실망했다.
변호사로서 관계되는 한 사람 한 사람 정면돌파를 해 나갔다. 국정원 기조실장에게 왜 폭로했느냐고 물어보았다. 문고리 3인방이라는 내관같은 비서관에게 당신이 가까이 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국정원장에게 안보의 중심에서 책임을 맡고 있던 당신이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질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당신은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했느냐고 따졌다. 그런 게 있기나 했느냐고 물었다. 목숨을 걸고 자기의 철학을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시대의 격류는 결국은 국회에서 한 줄의 법조문이 되거나 법원에서 정치성을 띤 판례로 남게 되어있다. 재판부는 속죄양인 이병호에게 업무상 횡령죄와 정치관여죄를 씌워 국정원 돈의 사용에 대한 법적 정의를 내렸다. 법으로 선언한 이상 더 이상 예전같이 국정원에 숨겨진 돈은 정치권력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의 작은 사무실을 찾아왔던 이병호 씨는 그런 사회적 십자가를 지기 위해 국정원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판결이 선고되고 한참 후 구치소의 그를 찾아갔다. 그는 의외로 편안한 표정으로 유리방으로 된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이 감옥에 들어와서는 보셨던 것 같이 아주 힘들었죠.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런 환란이 없었더라면 나는 국정원장을 마치고 그냥 골프나 치고 아는 사람을 만나 그렇고 그런 정치 얘기나 하고 살았을 거에요. 믿음이라는 것도 그저 형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나 가는 기저귀 믿음이었겠죠. 그런데 감옥 안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뭔가 진짜를 얻은 것 같아요. 깊은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처음에는 내가 언제 돈을 횡령했느냐고 철창 밖 하늘을 향해 소리쳤죠. 내가 언제 정치에 관여했느냐면서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기도 했어요.
판사의 판결 이유를 들으니까 너는 논리적으로 정치관여죄의 범죄인이 되어야 해, 내가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거야. 딴 소리 하지 말아, 하는 것 같더라구요. 판사의 추측만으로 있지도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창조되는 게 법정이더라구요. 억울함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잘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편안합니다. 이 모든 환란이 나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게 하는 채찍이었다고 느낍니다. 밖에 편하게 있었더라면 이런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그의 영혼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정보기관은 제가 평생 근무해 온 조직입니다.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아이들을 키울 때 어디 다닌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한 국가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관이에요. 법의 형식적인 잣대로만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그 긍정적인 측면과 기능을 나는 보는데 세상은 보지 못하죠. 이렇게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있던 조직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었다. 나와 얘기가 끝난 후 그는 담담히 자기의 어둡고 좁은 감방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