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9일
성경: 누가복음 9:51-62
설교: 거절 당해도 괜찮은 삶
누가는 예수님의 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9:51)
영어로는,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번역이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굳은 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는 그곳에 가야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거절. 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여정은 거절을 향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이 세상은 예수님을 온전히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9:51)
예수님은 거절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거절 받는 것이 좋아서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거절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거절의 현실이 그리로 올라가고자 하는 예수님의 여정을 막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거절 받아도 괜찮은 삶 -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 예수님의 거절 받으면 거절 받으리라. 같은 맥락의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을 바로 거절을 받으면서 시작하셨습니다.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누가복음 9:52, 53)
예수님에게는 거절 받는 것이 괜찮았는데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절 받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누가복음 9:54)
엘리야와 같은 권능이 그들에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입니다. 거절받은 것이 모욕적이었고 화가 났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감히 우리를 거절해 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거절에 대해 대하는 반응입니다. 분노합니다. 자기를 거절한 것을 그 사람들이 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기 원합니다.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은 뭐라 하십니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누가복음 9:55, 56)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고 계속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He moved on.
거절은 예수님의 Middle Name 과도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거절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해주었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그의 탄생 조차도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애가 태어나면 무엇을 합니까? 잔치를 하지요. 2세들도 꼭 돌 잔치를 챙기는 것을 봅니다. 중국 사람들은 100일이 되면 잔치를 합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탄생을 거절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왔지만 이 세상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복음 1:10, 11)
예수님의 삶은 거절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뭔가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 뭔가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순수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나를 만약 거절한다면,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나를 만약 거절한다면, 내가 믿는 바 때문에 나를 만약 거절한다면 그것은 결코 나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편견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바로 이런 종류의 거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가 믿는 바를, 자기가 하고자 하였던 일들을 포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거절 받아도 괜찮다 라는 태도로 묵묵히 예수님은 자기의 할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통 거절을 당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거절하는 이유를 내 속에서 찾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초라함을 느끼게 되지요. 자기도 모르게 준욱이 들게 됩니다. 움츠려 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잃게 됩니다. 자기의 정체성, 자기의 가치, 모든 것이 다 흔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거절을 받았는데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거절 받았다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 자기의 가치에 대해 흔들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해야 할 말씀이 있었고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고 지키고 살아야 할 소명이 있었습니다. 수 많은 핍박과 거절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꿋꿋이 자기의 할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거절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거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당할 때 마다 쉽지 않습니다. 거절을 당할 때, 그저 거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함께 따라오는 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수치심, 창피함, 분노, 소외됨, 우울함. 무엇 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내가 과연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내 성격에 결함이 있나? 등등 여러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런 질문들은 곧 우리를 더 깊은 어두움 속으로 빠트리기도 합니다.
거절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거절은 더 크게 될 수 있는 우리의 잠재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거절은 자신감을 우리에게서 앗아가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인정을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해서 그렇지 못할 때, 화가 나던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고립 시킵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며 살게 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바로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구원자가 아니었고, 그런 메시야가 아니었고,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것을 즐기며 사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강제로 추대하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결국, 사람들은 그를 뱉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절 받는 것이 괜찮았다는 말입니다. 나의 여정이 거절 받는 여정이라면 받아 들여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할 나만의 고유한 삶의 부름이 있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그 고유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여정이 거절의 여정이라면 거절을 받는 것도 괜찮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살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거절 받은 예수님의 모습 속에 숨겨진 진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베드로전서 2:7)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사도행전 4:11)
그러니 거절을 당할 때, 여러분만이 거절 받는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거절 당했습니다. 거절 받는 것이 수치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그저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고요하게 여러분에게 주어진 Authentic life를 여러분 나름대로의 고유한 삶을 사십시오. 감정에 휘둘림을 당하지 마십시오. Psychological game을 하지 마십시오. 거절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십시오. 수치라고 하는 딱지를 거절에 붙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마십시오. 거절이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거절을 다룰 수 있는 영적 근육을 키우십시오.
우리 인간이 받을 마지막 거절은 아마 우리의 삶의 거절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즉, 죽음 말입니다. 또한 그때 느껴지는 하나님의 부재, Absence, 이것이 마지막 거절의 단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경험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는 외쳤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물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겪어야 했던 거절의 단계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 마지막 거절 마저도 끌어 안으셨습니다. 마가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로 예수님의 말씀이 십자가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것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6)
그는 인생의 최후의 거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실 것을 믿으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거절은 예수님을 더 강하게 하였습니다. 세상은 그를 거절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거절이었지만 하나님의 받아들임은 부활이었습니다.
여러분,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나름대로의 귀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사람들이 뭐라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사십시오. 옳은 일을 하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판단을 할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