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년 6 월 22 일 주일예배
성경: 열왕기상 19 장 1-15 절
설교: 내 속에 있는 소망을 회복하라
오늘 이야기에서는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봅니다. 4 절이 이 것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열왕기상 19:4)
엘리야는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상징하면, 엘리야는 선지자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o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변형하셨을 때 나타났었지요. 우상숭배를 강조하는 아합 왕에게 맞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바알의 선지자들도 한꺼번에 없애 버렸습니다. - 딴 눈을 팔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 있었던 엘리야도 어느 날 절망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 이세벨이 그에게 보낸 위협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생존을 위해 도망을 쳤습니다.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홀로 좌절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합과 바알 선지자들을 대한 용감한 모습의 완전 정반대를 본문에서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한 때는 아무 두려움 없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해 나가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무력함을 느끼고 그냥 바닥에 주저 앉기도 합니다. - 몸과 마음은 지쳐 있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은 용기가 넘쳐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날은 아무리 작은 반대에도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단 한마디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절망은 유사와 같습니다. 우리의 힘을 앗아갑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앗아갑니다. 우리의 자신감 마저도 앗아갑니다. 고요하고 치명적입니다. 더 오래 있을 수록 더 깊은 어둠속으로 우리를 몰고갑니다.
절망속에서 헤어나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속에 소망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소망이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소망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상황 속에 가능성이 보이면 그럴 수 있겠지요. 진정한 절망감은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아무 소망이 없을 때 소망이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냅니까? 헛된 노력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입니다. 소망은 우리가 억지로 지어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얻는 힘과 같습니다.
엘리야는 절망속에 빠져 있었으나 그의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도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어둠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자신의 좌절과 실망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포기직전에 오른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천천히 회복시키시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쉼과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의 기본적인 필요를 돌보시고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이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한 과정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육체적으로 회복하고 호렙 산으로 올라간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십니다.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열왕기상 19:11, 12)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시는 말씀은 두 가지 입니다. 질문과 부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9, 13)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라 (열왕기상 19:15)
이 두 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있었던 곳이 있어야 하는 곳과 완전 정반대 쪽이었습니다. 남 유다 국경에서 휠씬 남쪽에 있는 시나이 광야에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국경에서 휠씬 북쪽에 있는 다마섹 광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엘리야의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슷한 맥락이 아닙니까? 자신의 죄책감과 절망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베드로에게 먼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물으며, 양을 먹이라는 부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를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냥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명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힘을 주고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 안에 소망을 회복시켜주는 말씀입니다.
세미한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우리는 매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갈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꼭 들어야 할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망이 흐르는 통로와 갖습니다.
이 소망이 우리 마음속에 임할 때, 자신감을 되찾게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하시고 있는 놀라운 일을 깨닫게 됩니다.
절망속에 빠져 있던 엘리야는 자신이 홀로 있다고만 믿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볼 때 노력의 성과는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헛된 수고라는 것을 그는 느꼈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10, 14)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다시 받고, 그의 여정에 전환점 같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0:18)
상상해보십시오. 이 것이 엘리야에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었겠습니까? 몇 백명도 아니고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것이 우리의 소망의 근본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시고 우리들을 위해 계속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몇 주전에 있었던 영어권 수양회에서 나왔던 말씀과 비슷합니다. 김목사님께서 공관복음서를 통해 각 복음서에서 보여주는 예수님과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약속의 성취에 대해 말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그룹 discussion 후에 목사님께서 전체 그룹에게 말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보이고 흐르는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의 흐름이 있다. 세상의 역사는 어둠속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어둠속에서도 선한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은 좁은 길로 따르는 믿는 자들을 통해 그의 역사를 매 순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는 매우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내일은 제가 안수 받은 지 첫 해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한 해가 금방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도전이 되었던 한 해였습니다. 하는 사역들은 예전과 거의 비슷했지만, 신기하게도 올해에 더 많은 어려움을 느꼈었습니다. 열심을 다해 꾸준하게 목회를 해 나가려고 했지만, 노력의 성과를 보기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외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교단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목회로 들어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노회안에서도 젊은 목사들이 사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교회에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은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안에 소망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계속 하시는 일에 제 초점을 맞춰 주셨습니다. 6 월초에 다녀온 총회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변에도 열심히 섬기며 선한 싸움을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은 다 일부분입니다. 좌절함도 우리 자신의 작은 판단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 속에 소망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감과 용기를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길을 혼자 걸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의지하며 나가야 우리는 우리의 소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3:5)
우리 안에 소망이 회복될 때, 우리는 온전해 집니다. 마음에 근심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더이상 주장을 못합니다. 온전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온전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 입니다.
오는 한 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허락하시는 온전함 속에서 소망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