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일
성경: 요한복음 17:20-26
설교: 짓누름이 아니라
품음으로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그 분의
유언 기도이지요. 예수님의 유언
기도를 우리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귀하게 여기고 마음 속에
새겨야 합니다. 청개구리도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유언 기도는 꼭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즉,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꼭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기도이고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기도를 깊이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하나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구절 구절마다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이 예수님의
바람이었고, 그 분의 기도였습니다. 제자들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 하나 되는
기도를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온 인류가
하나 되는 것이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게 원하시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옛날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는데 정말
오늘 꼭 필요한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세상은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갈등과 싸움은 아픔을 가져옵니다. 그 아픔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을 때, 그 아픔은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끝없는 갈등속에 인간은 살아갑니다.
힘은 짓누를 수는 있지만
치유하는 능력은 힘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힘이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로
힘으로서는 이 세상의 갈등이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더 큰 갈등만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세상의 갈등을 사라질
수 있게 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불필요한 것이었을
것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하시고자 한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사랑으로써만 이 세상의
치유가 가능하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셨던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기도를
하시기 전에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두주 동안 살펴
보았습니다.
힘과 사랑 이 두가지는
우리에게 항상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힘은 짓누름으로
하나를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은
품음으로 하나를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하시기
전에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 된 것도
바로 사랑으로 하나 된 것이지
힘으로 하나된 것이 아닙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23)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예수님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캐나다를 51번째 주라고
자꾸 부르는 것에 대해
캐나다 사람들은 아주 강하게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새로운 수상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발언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Canada is not for sale. 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보면 불안해
하며 말합니다. Hockey
Game을 보더라도 Oh Canada를 얼마나
더 열심히 부르는지 모릅니다. 지난, 에드먼턴 게임을
보니 독창을 하는 사람이
하다가 아예 자기가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하지 않고
청중들이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더 좋냐 나쁘냐를 제쳐놓고 힘으로
다른 나라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그 생각 자체가
싫은 것입니다. 수백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식민지주의의 사상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시는
많은 분들은 식민지의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몸소
경험해보신 분들입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짓누름으로가
아니라,
품음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인데
품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품는 것은 그저 참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품는 것은
가능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이것이 품는 모습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사람들을 놓고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바로 품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품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입니다. 상대방의 가시를
품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니 함부로 우리의 신앙에
대해 잘못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외없이 실패하였고 또한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때문에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다가 위대한 것은 제일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지만 흘러
들어오는 모든 것을 다 품어주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밑바닥에 있는
겸손도 필요하고,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서로
품어주는 겸손과 아량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품어주는 것이 없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언제까지
품어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에게 품어줄 수 있는
능력이 고갈되어 버릴 때, 우리는
품어줄 수 없습니다. 그때는 오히려
품어주는 것이 우리에게도 해가
되고 상대방에게도 해가 되고
그리고 관계도 더 나아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내 속에
그 힘을 키워야 합니다. 내 속에
나눠줄 수 있는 물이
없는데,
물을 어떻게 나누어 줍니까? 내 속에
생수가 차고 넘쳐 흐를
때,
그것이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37-39)
내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커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커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커집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더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2)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도,
십자가에서 자기를 처형하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영광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십자가
받는 그때를 자기가 영광을
받을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계속해서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2:23)
여기서 영광을 얻을 때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하시고 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한복음 12:24-26)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커질
수 있게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은 그저
하나 되는 것을 놓고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