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
성경: 요한복음 13:31-35
설교: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새 계명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구약에 이 계명은 나와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18)
이와같이 벌써 구약에 나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이 새로운 아이디어고 새로운 개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 참 간단한 개념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온 가족이 Blue Jays Game을 보러 갔습니다. 게임 전에 항상 국가를 부르는데 제 손자가 국가를 부른다고 해서 갔습니다. 물론, 솔로가 아니라, 그 학교에 있는 합창단이 노래를 하였습니다. 온가족이 다 갔는데, 누가 내 바지 자락을 잡아 당기면서 내 다리에 안기는 거예요. 보니 제일 꼬마인 노라가 내 다리를 꼭 껴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I love you.” 그랬더니 자기도 “I love you too.”그러는거예요. 심지어 어린아이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아주 간단한 개념이지만 도대체 그 뜻이 무엇인지?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이니 우리가 그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닌줄 압니다. 우리와 가까운 친구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닌줄 압니다. 내가족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닌줄 압니다. 물론, 그들은 우리가 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마음에 두시고 하신 말씀이 아닌줄 압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두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사랑 받을 만한 사람. 사랑 받지 못할 사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은 우리가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랑이 나옵니다. 그러나 사랑 받지 못할 사람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 받지 못할 카테고리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 받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와는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꼭 재미있는 말을 해서 재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Company가 좋으니 무슨 말을 해도 재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사랑 받을 카테고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난하고,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는 꼭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같이 있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피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사랑 받을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본문은 샌드위치 처럼 중간에 끼여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가장 중심된 내용입니다. 샌드위치 같으면 고기와 같은 것이지요. 그 중간에 있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중심에 두고 위 아래로 둘러싸고 있는 두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가 나간 후에 (요한복음 13:31)
누가 나갔다는 말입니까? 바로 유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이야기를 읽어 보십시다. 약간 길지만 전체 그림을 알기 위해서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독하십시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한복음 13:21-30)
두번째의 이야기는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한복음 13:36-38)
이 두이야기가 오늘 본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배반과 부인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샌드위치처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유다의 배반,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의 부인.
그러니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바로 배반과 부인이라고 하는 이야기 속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랑 받을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해 하는 사랑,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그런 사랑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자기를 위해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6:32)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 사랑의 정의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 이것은 구약에 나와 있지 않는 말입니다. 물론, 그 개념과 정신은 있었지만 그 말은 구약에 나와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런면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아주 이해하기는 쉬울지 모르나 실천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자동적이고 자연적인 본능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나를 가치 있게 여기고 나를 높여주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편한 사람들을 떠나, comfort zone을 떠나,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본회퍼는 크리스챤 fellowship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잔혹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쉼을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잘못하면 우리를 거기에 머무르게 하는 유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함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갈 길을 갔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저 끼리끼리 잘 어울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제자도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제자도가 때로는 외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외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외로운 길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많은 것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성만찬을 하며 유다에게 속히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 하셨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4-16장은 성령장이라고 소위 말합니다. 14-16장에는 성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성령에 관한 말씀도 바로 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연결하여 말씀하십니다.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14:15, 16)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랑은 오직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하고 싶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마음이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 -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니지만 이제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새로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새로운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계명입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도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받지 못할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을 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