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성경: 이사야 65:17-25
설교: 부활 -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17)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이사야의 세번째
부분에서 나오는 메시지 입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설명해 드린 것처럼, 이사야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이사야서 전체가
다 바벨론 포로와 연결되어 전해지는
메시지 입니다. 첫번째 부분은
왜 그들이 포로로 잡혀갔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번째 부분은 포로로 잡혀간
그 사람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이고, 세번 째 부분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세번째 부분에 속하는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까지
포로의 생활을 하였지만 이제
자유로운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온 집은
유토피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땅은 부유하고 풍부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땅은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아직도 폐허 가운데 있었고
성전은 아직도 무너진 상태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은 피폐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험을 보면 두가지의
패러다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의 패러다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창조의 패러다임입니다. 출애굽은 묶인데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사야가 말하는
것은 출애굽이 아닙니다. 새창조에 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새하늘과 새땅을 보았습니다. 더이상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헛된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다 보상될 것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장수를 할 것이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것입니다.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화평
가운데 조화를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입니다. 이것은 새 창조에 대한
비젼입니다.
이사야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젼 - 어디서 그는
이 비젼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은
아니였지요. 그의 상황은 아직도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그랬으면 하는 그의
바람입니까?
이 비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비젼이 바로 소망을
낳습니다. 소망은 이 비젼의 산물입니다.
이번에 쿠바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또한 기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바에 있는
성도들이 여러분의 풍성한 도네이션을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에서 3만불이라고 하는
큰 돈을 헌금하였다는 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이
주신 물품들을 12 bag에 넣어서
가지고 갔는데, 가방을 열 때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아주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자기들만 생각했지
국민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우리 통역관이 한탄해 합니다. 미국의
Embargo, 무역 통제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말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의 희생자들은 권력자들이 아니라, 바로
무고한 국민들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갔는지 정확한
통계를 알기 어렵지만 아주
작게 잡아도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나간 사람들이 백만이 넘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3백만이 나갔다고 합니다. 나간 사람들의
나이가 모두 15세에서 59세까지입니다.
많은 가족들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나이가 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손주들만
남았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나갔습니다. 지금도 19-49세에 속한
사람들은 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건물을 지날 때마다
줄이 길게 서 있는
것을 봅니다. 다들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서 있는 것입니다.
약방을 지나면서 보았는데, 선반에 약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텅텅 비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신 약품들,
Tylenol, 등등 여러가지 약들,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마탄자스 신학교에서 신발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다들 신발을
신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남은 사람들은 노인네와
어린 손주들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길가에 나가보면 그것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예배를 드릴 때도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일학교를
할 수 없는 것이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환경 속에 그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탄자스 신학교에서
학장님이 쿠바의 역사에 대해
강의해 주시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출애굽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창조의 패러다임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으니 출애굽의 패러다임으로
하나님의 움직임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들이 필요한 것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마다가스카에 갔을 때도
거기서 가난과 빈곤을 보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수 많은
젊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교회당도
그들이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바에는 매일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습니다. 누가 남겠습니까? 그저
나이든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만
남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제 3세계, 혹은 2/3 세계의 신학자들은
출애굽의 패러다임으로 자기들의 환경을
이해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한국의
민중 신학 미국의 흑인 신학, 여성
신학,
다 출애굽의 패러다임으로 그들의 환경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쿠바에 필요한 것은
새창조의 패러다임입니다.
첫 날,
우리의 마음은 모두 무거웠습니다. 매일
하루가 끝나면 같이 모여
그날 하루 경험한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절망적인
상황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고, 아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쿠바에 있는 사람들이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단어가 가장 강하게
들려 왔습니다. Dignity
and Hope 존엄성과 소망
그들은 소망을 지켰습니다. 교회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살아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탄자스에서 신학생들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상황에서 갖는 소망이
무슨 소망인가?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소망이 아닙니다. 소망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서 가질
때,
진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24, 25)
여러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희망의 신학을 하는데 가장
좋은 곳입니다. 희망의 신학을
연구하시고, 정립하셔서 진정한 소망의
모습이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다 다른 상황에서 사역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가
여러분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같이 동참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여러분은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계속 최선을 다해 같이
사역을 감당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만난
지도자들, 그들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소망의
능력으로 그들의 환경을 싸워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을 볼 때, 소망은
가능한 것입니다. 소망은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보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창조하실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생깁니다.
두주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무엇을 보십니까? 어둡고
불길한 검은 구름을 보십니까? 아니면
검은 구름 사이로 나오는
밝은 햇빛을 보십니까?
저는 항상 밝은 미래를
봅니다.
어려운 시간에도 밝은 미래를
봅니다.
그것이 나에게 비젼을 줍니다. 그리고
그 비젼이 나에게 소망을 줍니다.
부활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밝은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창조하실
새로운 삶에 초점을 두고
사십시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러분은 소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