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성경: 사무엘상 1:4-20
설교: 기다림과 기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무엇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삶이 어렵기
때문에,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잘 나가고,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을 때, 기다릴 필요가
없겠지요. 있어야 할 기쁨이
없고, 있어야 할 좋은
소식이 없고, 있어야 할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은 있어야 할 물이
그에게 없기 때문에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겪어야만 하는
공통적인 경험입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낫기를 기다립니다. 마음이
깨진 사람은 그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다립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립니다. 자식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식이
잘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묶인
사람은 풀려나기를 기다립니다. 죄로
신음하는 사람은 용서 받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이
모든 피조물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씀하시기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22, 23)
피조물이 다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또 기다리는
한 사람을 봅니다. 바로 한나입니다.
그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그 남편이
먼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슨 사회보장 제도가
되어 있어서 과부가 혼자
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엘가나가 죽고 나면 모든
상속권은 브닌나의 자식에게 갈터인데
그저 브닌나와 그 자식들이
잘해 주기를 바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길에 나 앉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의 아픔을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남편도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엘가나는 자기 나름대로
잘한다고 해주긴 했지만 진정으로
한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사무엘상 1:8)
그것은 자기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럴 수 있지만 자기가
죽고 나면 한나는 누가
돌봅니까?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보다는 오히려 당신은
나에게 열 아들보다 더 귀합니다
라고 하는 말이 더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사장 엘리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너무 괴로와서
그의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중얼 중얼 거리니
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았습니다. 물론, 브닌나는 더더구나
이해하지 못했지요. 오히려 한나를
격분시켰습니다.
고통의 어려움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외로운
것이지요. 우리는 욥기를 보면서
그것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위로한다고 찾아왔지만
그들은 오히려 욥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몰고 갔었을 뿐입니다.
욥을 더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남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고통을 들으면서 함부로 말해서도
안되고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아무도 이 고통을 진실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 받을 때, 할 수 없이
홀로 그것을 이겨나가야만 합니다.
누가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같이 있어 주는
것이고 같이 아파해 주는
것이지요.
오늘 한나의 이야기는 그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무엘
상하 전체를 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사무엘서를 시작하면서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했을까요? 왜 제일 먼저 한나의 이야기가
나올까요? 그것은 바로 한나의 이야기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었던 그런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경험과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잘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고, 어떤 한 사람이
그 나라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때때마다 사사들이 일어나서 그 위기를
이겨나갔던 불안한 시대였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올바른
지도자의 탄생을 간절히 바라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들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나의 이야기로
사무엘서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지금, 다운타운에는 Taylor Swift가 와서
난리입니다.
모든 길을 다 막아놓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82 Million 경제적인
이익이 토론토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영향을 줍니까? 하바드
대학 영문학부에 "Taylor Swift and Her
World”라는 과목을 Offer 하고 있습니다.
Stephanie Burt라고 하는 영문학
교수가 그 코스를 가르칩니다.
Swift의 음악, 가사, 그리고 그가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연구합니다.
젊은이들의 경험을 그의 노래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Bob Dylan 외에는 그렇게
노래를 쓴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래가 보일
때, 기다리는 것은 그래도
쉽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한나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과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무엘서 전체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하면 한 사람의 탄생으로
흘러갑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엔진과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태어나기 까지 겪는
고통을 묘사한 것이 바로
사무엘서입니다. 그 시작이 누구였는가
하면 바로 사무엘의 탄생이었고,
사무엘의 탄생 뒤에는 한나의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사무엘서
기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나의 미래가 열리면서 이스라엘의
미래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에게 기다림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난
목요일 제 Inner
Voice가 기다림의 선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Inner voice를 받고
한 장로님이 저에게 이멜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다려야
하는데 하나님과 Tune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뜻대로
기다리면서 30년이 넘는 긴 세월을
허송하는 바보같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기다림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수요일에 같이
공부하였습니다. 사라는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하여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인생이 꼬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한나는 사라와 같이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기다림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자기의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갔습니다. 자기
스스로 그 아픔과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그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꾸 아픔과 고통을
없애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제일
잘 팔리는 약이 진통제입니다.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진통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통제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꾸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려고만
합니다. 모든 것이 Fast food, 전자
레인지, 커피를 사도 기다리지도
않고 그저 가서 Pick up 할 수 있게
App으로 주문을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저
고통을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하지만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진통제를
먹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을 그저
귀찮게만 여기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지금은 고통 스럽지만
그 고통을 감수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응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고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지금은 보지
못하지만, 지금은 그 영광을
맛볼 수 없지만, 앞으로
올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 6)
우리가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포기하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베를린 담이
무너진 것도 바로 동독일
라이프찌히에 있었던 한 교회,
St. Nikolai 교회에서 그들이 기도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자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잡혀갔는데 그래도 더 많은
숫자가 모였습니다. 1989년 10월
9일, 70,000명이 모였습니다. “We are the people. “No Violence” 8,000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베를린 담은 무너졌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어제 Inner Voice는 정의의
기도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도는 기도하고 의심하지
말고 담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런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두 왕을
세운 선지자요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바로 사울과 다윗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은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을 기도로 바꿀 때에,
그 기다림은 의미 있는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