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일
성경: 마가복음 12:28-34
설교: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라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한번은 테레사 수녀가 토론토
대학에 왔었습니다. 야외에서 모였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삭개오처럼,
사람틈을 비집고 앞으로 가서
그분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아주 키가
작고 얼굴에는 주름으로 가득찬
시골 할머니 같은 분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풍기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마이크 앞에서 그의 연설을
시작하는데 딱 한마디였습니다.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다른 말도 하셨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이 저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논쟁을 하는 것을
보며, 놀랐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깊은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이제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12장은 여러 그룹이
예수님께 와서 도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위 그당시 그 사회를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되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사두개인이 나와
부활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들이 이런 질문들을 던진
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함정에 빠트릴까
하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들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함정에 빠지시지 않았습니다. 하나
하나 아주 현명하게 답을
하십니다. 그의 답은 깊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세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과 달랐습니다. 이 질문은
서기관으로부터 왔는데 서기관들도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서기관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질문에 깊이 있게
답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마가는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마가복음 12:28)
계명에 대해 예수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가 진정으로 궁금했습니다.
그 당시에 계명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계명을 위해 살고, 계명에
의해 살고, 계명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질문을 다시
현대식으로 바꾸어서 한다면 이런
질문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있고 목적입니까? 삶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그의
질문은 바로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외에 모든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주석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에 유명한 선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힐렐이라고
합니다. 그의 손자가 바로
가말리엘이고 가말리엘의 제자 중의
하나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이웃에게
하지 말라. 그것이 토라의
전부이다. 그외의 모든 것은
그것에 대한 주석일 뿐이다.
가서 그것을 배우라.
사랑은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사랑을 하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사랑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도 사랑을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외에 무슨 다른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라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때마다 참 보기에
좋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3, 4)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0)
매일 하나님께서 그의 걸작품을
만드신 후에 보기에 참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딱 한번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보고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저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묶어줄 사랑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세기 2:23)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사랑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이
죄를 저질렀을 때, 그들은
그 사랑하는 능력을 잃게 되지요.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12)
더이상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 당신이 주신 그 여자가 벌써
갈라짐이 보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 여인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하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로 만듭니다.
예수님은 창조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창조의 질서, 창조의 이치
-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그것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 바로
그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다면
여러분이 지키는 계명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그외의 모든
것은 그 사랑에 대한
주석일 뿐입니다.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마가복음 12:33)
그 답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마가복음 12:34)
그리고 마가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냅니다.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가복음 12:34)
모두 진리의 말씀에, 그
힘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무도
더 첨가할 말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과 마지막을 보았고,
그 전의 모든 쓸데없는 논쟁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잃어버렸고,
그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제대로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의 어떤 신앙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사랑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이 고백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을 되찾아야 합니다. 사랑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길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을 발견할 때,
바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 8)
여러분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홀로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어떤
것도 이 사랑에서 여러분을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7-39)
사랑이 여러분 속에 회복
될 때에 여러분은 더이상 외로운
섬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느낄 때가
있지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혜인 시인께서 이 외로움을
잘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사랑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외로운
빈 섬처럼 살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사랑이 회복되게
하십시오. 이것은 마치 성냥개비와
같습니다. 그 성냥개비 끝에
불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표면에 긋기만
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속에 모두 사랑의 불이
잠재력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그 불을
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불이
여러분 속에 사랑의 불로
타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