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7일 (28주년 창립주일)
성경: 욥기 42:1-6
설교: 고통이 빚어내는
믿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욥기의 마지막 장이고, 욥의
삶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메시지 입니다. 욥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욥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 왔던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하여
주는 귀한 책입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질문이 무엇입니까? 의로운 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처벌을 받았을 때, 그 때에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착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Rule이 깨질 때 우리는 불안해
합니다. 착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욥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그런데 그런 욥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웬만한
고통이 아니라 아주 극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착한 사람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도 과연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 하는
질문이 올라옵니다.
오늘 본문은 욥기의 결론입니다.
욥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2-6)
욥기를 쓴 사람의 결론은
욥은 의인으로써 고통을 받고,
처벌을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를 경외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을
회개까지 합니다.
의인으로써 고통을 받아도 아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보여 준 사람이 또 하나
있지요? 누구입니까? 예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셨지만
고통을 받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초대 기독교인들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하였지만 많은 핍박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그런 환난 가운데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바울
사도의 삶의 모습을 잘 보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고, 거기서 복음을
깨달았고 그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보상을 받는 대신 그는
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만물의 찌끼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그를 믿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믿음위에
시작 되었고, 세워졌습니다. 잘 나갈
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다가
어려움이 닥치고 힘든 일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그런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늘 한결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사람들이
꼭 인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때 오히려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Testing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Testing이 쉽게
견뎌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쉽게 견뎌낼
수 있는 Testing이라면 Testing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Testing은 어렵습니다.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아브람은 그 Testing에서
실패하였습니다. 욥이 고통을 받았던
것도 사탄이 Test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의로움을 칭찬하니
사탄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기 1:9-11)
욥도 Testing을 받았습니다. 아주
어려운 Testing이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겨낼 수 없는 Testing이었습니다.
욥기 42장이 그냥 나온
결론이 아닙니다. 이것이 나오기까지
욥의 생각, 욥의 감정,
욥의 마음, 이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욥기입니다.
너무 힘드니 그는 자기가
태어난 것을 저주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기 3:11, 12)
욥은 하나님에게도 자기의 분노를
토해 냈습니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욥기 7:20)
욥에게 그의 결론이 나오기
전에 이런 과정이 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모든 고통을
끌어 안고 하나님께 오히려
회개하며 나오는 욥을 보게
됩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늘 보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늘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악인이 잘 나갈
때가 있고, 의인이 고통
받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은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내가 원하는대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욥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욥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기 42:2, 3)
이 세상에 불공평한 일이 일어나고,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깨달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못 하실 일이 없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삶의 환경이 늘 좋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시고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십자가를 세워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잠시 고통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고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런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은 참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고통이 임할 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믿음은 평상시의
믿음과는 아주 다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진주와 같이 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입니다.
환난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견뎌낼 뿐만 아니라, 그 환난이
새로운 믿음을 빚어낸다는 것을
여러분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빚어진 믿음은
보석과 같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만들어지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대대로 내려
오는 믿음이 있습니다. 조상들로부터
이어 받은 믿음입니다. 아주
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녀들에게도 전승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함으로 이루어진
믿음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축복해
주시고, 위험에서 막아주시고 건져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이루어진 믿음입니다.
아주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않고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빚어낸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고통을 이겨나갈
힘을 줄 뿐만 아니라,
고통이 믿음을 빚어내는 일이
일어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 4)
환난이 빚어낸 믿음과 소망은
두려움을 짓누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에스더가 가졌던 믿음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서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를 거치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환난이 빚어낸
믿음을 갖게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욥은 환난 전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아직도 두려움에 가득 찬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자식들이 파티를 한 다음에
열심히 제사를 드렸던 것도
자식들이 혹시 잘못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환난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기 3:25)
그러나 마지막에 42장에 나오는
욥의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한
믿음이었습니다.
환난이 빚어낸 믿음은 귀한
믿음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환난이
여러분에게 임할 때,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그것에 짓눌려 살지도 마십시오.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빚어내는 믿음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믿음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 교회가 그런 믿음
위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28주년 창립주일을 맞이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이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끝에
축복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직 그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아직 축복이 그에게 임하지
않았을 때 고백한 욥의
고백입니다. 고통 가운데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만들어낸 믿음을
욥은 갖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가져오는
믿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