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성경: 고린도후서 4:5-12
설교: 질그릇이면 어떤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바울이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것을 그는 발견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고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을 보았고,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자기가 확실하게 믿고 살았던 신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 하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었던 확신과 자신감은 진정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가장 큰 발견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홀로 스스로 있지 않다 라고 하는 그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다 답을 갖고 있을 필요도 없고 또한 모든 문제를 자기가 스스로 홀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하고, 아무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고, 당신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참 외로운 생각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 찬송가를 지은 사람이 그런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이지요. 나홀로 모든 짐을 지고 간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프레셔를 받으며 자기가 스스로 세워놓은 어떤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하였습니다. 훌륭한 바리새인이 되어야 했고, 좋은 아들로, 좋은 리더로, 훌륭한 유대인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것을 증명해야 했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강해야 하는 것이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이기적인 면에서 자기 중심적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자기 중심적이었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자기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하고, 자기 스스로 가족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자기 민족을 지키고, 자기 종교를 지키고, 심지어 하나님마저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챤을 잡아 죽이고 가두기 위해 다메섹까지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가 깨달은 것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자기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큰 압박감 속에서 살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의롭지도 않으면서 의롭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또한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 위선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술에 노예가 되고, 마약에 노예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는 자유에 대해 많은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자유함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그에게 일어났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씌운 멍에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에게 노예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의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 자신의 이미지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그런 강박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두 손으로 바쳐 들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그가 자유함을 경험했는데 그 자유함을 경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심히 큰 능력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는 자유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는 그런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는 그저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질그릇이면 어떤가 하는 놀라운 편안함이 생겼습니다. 진정한 확신과 자신감이 이런 깨달음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이 괜찮다고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이전에 그를 두렵게 하였습니다. 내가 그저 질그릇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중요한 그릇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원했고 되어야만 했었습니다.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전 모습을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나는) 베냐민 지파요 (나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나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나는) 교회를 박해하고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립보서 3:4-6)
나는, 나는, 나는… 그것이 바로 바울을 묶어 두었던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에 그는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삶의 반경을 줄여야 합니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삶으로 줄여야 합니다. 자기의 작은 생각으로 인생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없애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챤들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그의 삶은 커졌습니다. 큰 세계를 보았습니다. 자기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소의 사울이 사도인 성 바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수요예배때 그것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가는 바울을 봅니다. 자기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뚫고 들어가는 바울을 봅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우상은 자기 우상이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을 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걱정과 두려움에 싸이고 말 것입니다. 인생의 기쁨도 알지 못하고 늘 피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붙잡고 살 때에, 여러분은 허무함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 바울은 자유를 찾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자기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에, 아니, 연약함에 대한 두려움에 더이상 노예가 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계속해서 여러분을 못났다고 할 것입니다.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시각에 여러분 자신을 내어주지 마십시오. 그런 세상에 여러분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상종할 필요도 없습니다.
질그릇이면 어떻습니까? 그들보다 못나면 어떻습니까? 수 많은 돈과 높은 명예를 가지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바울도 심지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3)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여러분 속에 여러분은 보배를 갖고 있습니다. 보배를 담아놓은 질그릇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심히 큰 능력이 여러분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단하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질그릇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심히 큰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다룰 수 없는 환경에 처할지라도 여러분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8, 9)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인생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심히 큰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자기 우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으십시오. 자기 우상으로부터 치유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자기 우상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때, 심히 큰 능력이 여러분 속에서 치솟아 오를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해 죽었을 때,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 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십시오. 그 능력이 바로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킨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그 힘은 계속해서 역사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이 힘은 계속해서 역사할 것입니다.
매우 어려운 삶의 환경을 당할 때, 고요함을 찾으십시오. 작아지지 마십시오. 도망가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잘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