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성경: 요한복음 17:6-19
설교: 마지막 기도에서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가시기 전에 드린 마지막 기도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자기에게 가까이 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사로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명해졌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문제도 또한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없애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것이 11장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12장에는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으며 그의 장례를 준비하고,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죽음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죽음이 예수님에게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 기도를 들었습니다. 이 기도를 하신 후 예수님은 잡혀갑니다.
참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저 기도의 내용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직면하였고, 죽음이 바로 자기의 눈 앞에 다가 왔지만 그의 생각은 온전히 제자들에게 가 있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 외에는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저들이 이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세상이 그들을 미워해도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게 저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해주시고 그럼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등등, 온통 제자들만을 생각하고 걱정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곧 죽을 것인데, 자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마음은 제자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랑 아닙니까? 사랑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4,5)
예수의 마음을 얘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 -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자기를 비우지 않고서는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자기를 비워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늘 자기의 Agenda로 가득 차 있고, 자기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의 원함으로 가득 차 있다면 절대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다는 것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사랑입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걱정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홀로 스스로 앞으로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걱정하셨던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걱정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모습입니다. 부모는 늘 걱정합니다. 자식 때문에 늘 걱정합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마음 고생은 하고 있지나 않은지, 늘 걱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부모입니다.
애들하고 만나고 나면 제 아내는 늘 걱정을 합니다. 뭐가 잘못 되어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동적으로 걱정이 나옵니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등, 그런 말을 했는데 혹시, 어려움이 있지나 않은 것인지. 걱정 속에 거룩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걱정입니다. 부모는 늘 자기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마음이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도 저희가 묵상해 보았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부모이고 그리고 제일 처음 경험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것은 사랑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우리를 우리 되게 하여 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항상 이 응어리가 있습니다. 아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식을 보면 아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식이 아파하면 그 아파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아픕니다.
예수님은 이 부모의 아픈 심정을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 주었습니다. 타락한 탕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 탕자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의 목이 길어졌습니다. 큰 형은 그런 놈을 위해 무슨 잔치를 베푸느냐고 투덜대고 화가나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큰 아들도 아픈 마음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걱정도 없고 아픈 마음도 없겠지요.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예수님도 말리지 못합니다. 자동적으로 나오는 걱정입니다. Holy Burden, 거룩한 짐 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걱정을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식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하나님께 맡기듯이 우리도 우리의 자식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부모가 기도할 때, 거기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함 속에서 나오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와의 Interaction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18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렇게 가까이 관계를 가져보질 못했습니다. 아버님도 바쁘셨고, 나도 사춘기를 지낼 때이기 때문에 별로 부모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깊은 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이민 동지이고, 같이 고생했고, 다 커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성품을 통해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꼭 부모이기 때문에 갖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였듯이 우리도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