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성경: 요한복음 15:9-17
설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랑을 두셨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마지막 계명입니다. 마지막 계명이고, 가장 큰 계명이고,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 말씀하신 것, 가르쳐 주신 것, 모든 것을 통털어서 살펴보면 결론이 이것입니다. 사랑하라.
그래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2)
계명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을 뜻합니까? 아닙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인생되게 하는 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 그것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또한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의 유명한 사랑 장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그것이 바울 사도의 결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또한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얼굴에 밝은 미소가 있는 것을 봅니다.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말씀해 주심으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이 기쁨을 살아나게 합니다. 사랑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행복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여 준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 사랑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지 못합니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많은 미움과 분노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하며 사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많이 보이는데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혹시 마음 깊숙히 그것을 믿지 않는 것 아닙니까? 확신이 없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인들은 사랑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고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 마음 속에 그것이 진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사랑을 우리 속에 두셨습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것을 두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눈, 귀, 팔, 다리 보다 더 중요합니다. 위, 창자, 간, 콩팥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며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속에 두신 하나님께서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두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우리를 창조하실 때, 사랑을 우리 속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 8)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우리 속에 두셔서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서로 서로 연결되고, 이 세상과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제일 처음 창조된 인간인 아담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세기 2:23)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은 마치 본능과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영어권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에게 약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엄마로부터 기도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괜찮습니다. 저도 제 아내가 은혜를 출산했을 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그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 어머니의 안타까움, 사랑을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입니다. 이 세상과 제일 처음으로 만난 것이 바로 부모들입니다. 그들이 제일 처음 경험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사랑이 온전한 성인으로 우리를 만듭니다.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18살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는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성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바울 사도가 사랑과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11)
바로 그 유명한 사랑 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어린 아이의 생각을 버리고 장성한 어른이 된다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배울 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강해질 것입니다. 근육이 많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극심한 상황도 견뎌내고 이겨나가는 것이 바로 강한 것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강해질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을 많이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 상처를 받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이 망가집니다. 마음이 굳어집니다. 사랑을 받을 수 없고,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이 망가진 사랑을 고쳐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을 다시 불태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은 치유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치유를 가져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예수님의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사랑이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사랑이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를 치유합니다. 우리의 질병, 상처, 아픔, 고통, 걱정, 근심, 의심, 어두움 - 이 모든 것들을 다 치유하셨습니다. 우리의 강퍅해진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이전에는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랑을 자유롭게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그저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은 사랑을 느낌으로만 알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느낌은 왔다가는 갑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느낌이라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백현우가 홍혜인을 그저 느낌으로 사랑했던 것 아닙니다. 그는 홍혜인을 위해 총탄을 맞았습니다.
사랑은 느낌도 아니고 또한 행동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 하나님과 Interact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묵상하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각인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훈련입니다.
열심히 훈련하여 그 사랑이 성장하게 하십시오. 하루 아침에 마라톤을 뛸 수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바울 사도와 같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비우시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훈련을 하십시오. 상처가 여러분 속에 있는 사랑을 망가지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하여 고통 하는 사랑을 키우십시오. Compassion.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틱낫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Without understanding, love can’t be true love. We must look deeply in order to see and understand the needs, aspirations, and suffering of the one we love.
훈련을 하여 여러분 속에 있는 사랑이 치유를 받고 더 강해지게 하십시오. 훈련을 하여 여러분 속에 있는 사랑이 자유롭게 여러분으로부터 흘러나오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