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주일예배
성경: 사도행전 8:26-40
설교: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라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절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요한복음 3:8)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소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우리가 맘대로 통제하거나 추측할 수 없습니다.
임의로 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쉽고 편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을 원합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데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이 모든 것에 정반대처럼 들립니다.
성령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근데
그 말이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어번역은 “where it chooses”
라고 합니다. 성령의 움직임 뒤에는 항상 뚜렷한 목적과 의도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8)
성령께서 항상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 것이 올해 표어 구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성령은 고립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한 곳에만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은 항상 외부로 나가십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주변 뿐만이 아니라, 땅 끝까지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새 생명의 선물을 온 인류가 얻을 수 있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3)
성령께서 이 땅에서 계속
역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원하십니다. 이론상으론 복잡하지 않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기는 큰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나요? 복음이 그렇게 해서 전파된
것이 아닙니까? 김목사님께서 예전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이라고 해서 사도들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성령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갔던 사람들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신 일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립의
이야기를 봅니다. 여기서 나오는
빌립은 사도 빌립이 아니라, 전도자 빌립 입니다.초대교회에 있던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 택함을 받은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두 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늘 성령이 이끄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두 군데서 나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사도행전 8:26)
일어나
가서 보니... (사도행전 8:27)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8:29)
빌립이
달려가서... (사도행전 8:30)
매 순간마다 성령께서
빌립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어떤 면으로는 너무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부르실 때는 절대적으로 명확합니다. 바람이 불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너무 뚜렷해서 때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기보다는 가리키시는 곳으로부터 우리의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의심의 음성들이 우리 마음을 둘러싸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갈 수 없는 것에 대해 온 가지 이유를 댑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른 계획이 있어서...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데... 명확하고 간단한 것을 늘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는 바로 우리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회에
길로 부름을 받았을 때,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서 2년동안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며 아무에게도 이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깊은 신념과 확신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 소명을 예술의 길을 걸어가며 살아가려고 했지만, 목회의 부르심으로 응답 받게 되었습니다.
그 부름이 정말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런 급격한 변화를
받아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어떤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섬에 있는 집에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어느 한 공간을 지나가는 도중에 제 옆 쪽을 보니,
창 밖으로 넓고 아름다운 바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다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바다에 나가보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나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가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두려워서요. 그 경험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한 자리를 빙빙 맴돌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성령은 익숙함과 확신으로
가득찬 작은 세계 너머로 우리를 이끌고 가시길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 그리고 변화를 체험하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것이 바로 빌립이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빌립은 성령이
인도한 곳으로 가기만 했습니다. 가는 것으로 말미암아 에티오피아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빌립의 도움과 가르침으로 그 내시의 삶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말씀을 통해 예수가
누군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빌립에게 세례까지 받기를 원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갈 때, 우리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들을 경험합니다. 전혀 계획하지도 않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겪게 됩니다. 성령께서 구체적 이면서도 신비롭게 역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들이
맺어집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보게 됩니다. 성령이 새롭게
여시는 문들을 보게 됩니다.
끝내 제가 목회에 길로
가겠다는 맘을 먹었을 때, 성령께서
한 문 한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 조화롭고 쉽게 이루어 지는 거 같았습니다.
성령께서 낙스 신대원에서 저를 박태현 목사님께 인도해 주셨습니다. 박목사님을 통해
디모데 교회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사역지를 찾는 시기 때 성령께서 이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통해 많은 성도님들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영적인 멘토링과 목회의 기본을 가르쳐
주신 김목사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벌써 7년이 넘은 이 시점에, 성령께서 저를 다시 인도하시는 것을 봅니다. 다른 곳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입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머물러 있으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계속 이 공동체를 섬기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목회자로써 입니다.
Minister of Word and Sacrament.
논리적인 결정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어느 분이 물어보셨습니다.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데 왜 여기서 계속 있기 원하세요?”
한 면에는 그 것이 저에게도 미스테리 같이 느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에서 요즘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입니다. 서서히 펼쳐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올 해 표어와 같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을 넘어 증인이 되도록 이 공동체를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온 유다와 사마리아 뿐만이 아니라, 땅 끝까지. 즉, 한국 이민교회의 정체성을 단단히 갖으며, 문화적으로
다양한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비전을 뜻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모데 교회가 계속 조금씩 늘어나고 성장하며
꽃처럼 피어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디모데 교회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이야기에 동참하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여정을 계속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부름은 그냥
개인적인 부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부름은 이 공동체의 부름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만남의 끝이 약간 흥미롭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사도행전 8:39)
제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구절을 인용하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내 삶을 인도하는 분은 내가 아니라 성령이시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서 모든 일에 충실하기만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끝까지 순종하며 충실할 겁니다.
삶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는 곳으로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이 여정에 함께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지혜와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 교회를 통해 성령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