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2일
성경: 마태복음 4:12-22
설교: 계산을 넘어선 인생
지난 주에 우리는 열정
있는 삶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열정 있는 삶은
소명감을 느낄 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더 큰 것과
연결이 되어 있을 때, 여러분의 인생보다 더 큰 것에 연결이 되어 있을 때, 삶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더 높고 숭고한
목적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방향을 주고, 우리는 삶의 목적성을 갖게되고, 그때, 삶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고
그럼으로 삶의 열정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명감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명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좀더
의미 있게 살기 원한다고,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명 이라고 하는 것은
부름을 받는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지요.
부름은 나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밖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6)
이것을 볼 때, 삶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가
원해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곧, Immediately, 즉각, 반응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initiate,
시작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부르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알았습니다. 이 길이 그들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20)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22)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고 하는 가사가 잘 맞는
가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물론,
그 노래는 잘못된 노래도 아니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 노래 뒤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았을 때, 선뜻 나서겠다는
그런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예 하고 답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곰곰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각적이고, 충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더 좋은
반응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는
늘 제자도에 숨겨져 있는 희생,
Cost of Discipleship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다 계산해서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그 의미를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도 처음에 예수님을 따를
때,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세계에 자기
자신을 던졌을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입니다. Google에서 하나님에
대해 search를 하고, 그것을
다 읽은 후에,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오셔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마치 알려져 있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우리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려지지 않는
곳으로 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왜 자기
고향을 떠나야 하는지도 말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떠났고 처음에는 하란이 그들이
가야할 곳인지 착각하고 거기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란이
그들이 가야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그곳을
떠나서 약속된 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고향 우르를
떠날 때,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뒤를 돌아다보니,
자기가 얼마나 축복받았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셨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아니, 필요
이상의 풍성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바로 부름을 받은 사람의 삶을 잘 묘사해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앞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의
매일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래된 이 복음성가를 좋아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Ira Forest Stanphill)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느꼈던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누가
내일을 주장하는지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있고, 그 손이
그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곧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늘 소명대로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실패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한 제자는
예수님을 부인하였고, 또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갔습니다.
도망가는 삶, 어떻게 보면
그것도 영적 여정의 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때로 우리도 주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삶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어떤 도움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도망갑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할 마음이
없을 때, 하기 싫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갑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요나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의 소명을 마칩니다.제자들도
돌아와서 주님께서 시작하셨던 것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명의 강한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을 끌고 가는 것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명의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가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그 크신 부름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마태는 말합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태 4:13, 14)
여러분이 소명감을 갖고 살 때에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소명감을 갖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지만
자신감을 갖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내일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름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맡기며 알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슬퍼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번
물으셨습니다. 세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번 물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앞으로 당할 일에 관한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셔야 하기 때문에 세번
확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복음 21:18, 19)
베드로가 자기의 힘으로 그것을 감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끌고 가는
소명의 힘은 강했습니다. 바로 그래서 베드로는 그 소명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명감을 갖고 살 때에,
여러분들은 담대해질 것입니다. 어느
것도, 미지의 세계도 여러분을
두렵게하지 못합니다.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이
여러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