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4일
성경: 누가복음 11:1-13
설교: 기도는 영혼의
갈망이다
기도가 중요한 것은 우리
다 압니다.
기도의 생활이 없이 우리의
영적 삶은 무미건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걱정과 근심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게 되고
또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는 중요하고 참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기도라고 하는 이런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기도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서 어떤 행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의 열매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기도를 말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또한 기도는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기도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저에게 기도는
갈망입니다. 내 속에 있는 갈망입니다. 나의
영혼의 갈망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갈망, 또한 살기를
원하는 갈망,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42:1, 2)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갈급함, 갈망, 목마름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는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갈망을 갖고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더 강렬해집니다. 이 갈망은
깨끗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 속에 있는 갈망을
하나님께 털어놓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것 아닙니까?
자기 자랑을 할 필요도
없고,
자기 자신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자기 자신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간절함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면에서 세리의
기도가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더 훌륭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누가복음 18:11, 12)
그런데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누가 자기 자신을 드러낼
필요 없이, 나타낼 필요
없이,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이,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았습니까? 바로 세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리의 기도가 더 훌륭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짧고 간단하였지만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끝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누가복음
18:14)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았을
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어떤
형식에 매인 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기도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는 것을 배우기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누가복음 11:1)
우리의 갈망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우리의 갈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갈망이 표현될 때에 그것이
바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갈망의 보이는
모습입니다.
기도에는 간절함이 그 속에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누가복음 11:5)
여기 밤중에 라고 하였는데
영어로는 Midnight, 밤 12시를
말합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밤에
다 잠들어 있는 그 시간에
친구를 깨우기까지 하였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기도의 간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 속에는 이런 간절함이
있습니다. 기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간절함이 기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누가복음
11:9)
이 문장의 희랍어를 제대로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구하고 또 구하고
계속 구하라. 찾고 또 찾고
계속 찾으라.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계속 두드리라.
그것이 바로 desperate
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집요합니다. 다른 Option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결혼 예행
연습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전에 한인장로
교회 다녔던 분을 만났는데, 딸 잘 있냐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때, 온 교회가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제 딸은
기적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의사가 10%밖에 살 확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Women’s College Hospital의 기도실에서
살았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그날까지 피가
오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날까지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기도는 갈급함, 다급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른
Option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속에 먼저 이런
갈급한 갈망을 키워야 합니다. 이런
갈망은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갈망이 기도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치료 받기를 원합니다. 이 고통이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자녀가
살기를 원합니다. 제가 살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에 어떤 성도님이
전화해서 자기 딸에 대해
너무나 마음 아픈 얘기를
하여 주셨습니다. 그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 다른 어떤
분이 전화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전화 했습니다. 지금 Depression
때문에 너무나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갈망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예수님의 raw desire, raw 한 갈망이
그대로 보이지 않습니까? 살기를 원합니다. 그의 간절한
갈망이 있는 그대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렇게
기도해도 되나, 뭐,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갈망이 그저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표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갈망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누가복음 11: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을 들으십니다. 구하면
받을 것입니다. 찾으면 찾아낼
것입니다. 두드리면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구하기 전에, 찾기 전에, 두드리기
전에,
반드시 간절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그 갈망을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갈망을 들으십니다. 엘리야가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도망 다니는데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두려움 속에
사는데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열왕기상
19:4)
하나님은 엘리야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식을 주고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갈망을 들으십니다. 그 갈망은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이런 갈망이
여러분 속에 있을 때, 여러분의
기도는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갈망이 없다면 만마디의
아름다운 말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갈망이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이 갈망이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이 갈망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갈망을 하나님 앞에 털어
놓으십시오. 여러분 깊숙한 곳에 있는
그 갈망을 하나님께 표현하십시오. 대단한 사람일
필요 없습니다. 거룩하고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될 필요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거친 감정마저 털어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읽으실 줄 아십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간절한
갈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