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3:9-13
설교: 사랑을 발견하자
초대 기독교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하는 것이 저에게는 참 궁금합니다. 어떤 느낌으로 그들은 살았을까? 무엇이 그들을 붙잡고 있었는가? 그렇게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무엇에 눈이 뜨여졌었는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뭔가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그런 심한 핍박을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게 하였던 힘이었는가?
예를 들어, 바울 사도에게 무엇이 그에게 그런 확신을 가져다 주었는가? 그는 잘 믿는 유대인으로써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그는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충분한 돈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꽤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의로는 어떤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자기의 의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바꾸어 놓았는가? 무엇이 그에게 그런 새로운 열정을 주었는가? 어떻게 그는 삶에 대해 또한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열정적이었는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며 살았던 그의 삶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던 것인가?
그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가 사랑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전에 그는 율법의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계명의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다. 두려움의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그는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갖고 살아야 할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바울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쓴 서신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서신이었고, 신약의 모든 책 가운데 가장 제일 먼저 쓰여진 글이었습니다. 쓰여진 순서별로 성경이 나열 되었다면 마태복음 전에 위치할 서신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초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서신입니다.
거기서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데살로니가 전서 3:12)
바울이 발견한 것이 사랑이었고 그 외의 모든 다른 것들은 이차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바로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바울은 이 중요한 것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아는 깨달음, 예언의 능력, 산을 움직이는 믿음, 자기의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의 몸마저 희생하는 희생, 이 모든 것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사랑이 가장 큰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이 사랑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을 가능케 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두움의 권세를 몰아냈고,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의 힘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였고 하나님의 사랑 때움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7-39)
그는 “확신하노니”라고 말하였습니다. 확신하노니 라는 말은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을 발견하였고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너무 강한 확신으로 그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믿음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발견은 가장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이 아닌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사랑을 보지 못하게 못합니다. 거절 당하고, 소외 당하고, 미움을 받고, 실패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을 받다보면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이 경험들이 우리의 눈을 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저주받은 것 같은 인생을 삽니다. 고독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랑이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 8)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으로써는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늠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명확하게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2, 13)
우리가 사랑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에너지와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 기독교인들을 움직였던 힘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 사도를 움직였던 힘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힘 없이 살아갑니까? 왜 우리에게 열정과 감격이 없습니까? 두려움 속에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 속에 살지 않고 두려움 속에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닙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오늘이 대강절 첫 주입니다. Advent라고 하지요. Advent라는 말은 라틴어로 온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져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celebrate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교회를 크리스챤 교회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를 크리스챤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많은 잘못을 품고 삽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오해를 했습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는 자기가 의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자기가 의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을때야 비로서 자기의 죄를 덮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의 귀한 제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나서야 자기가 연약할 뿐만 아니라 사악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맞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자존심은 죄를 없애주지 못합니다. 감추게 하여 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서 우리의 죄는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우리는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무거운 짐이 들려지는 경험을 할 것이고 가벼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바로 거룩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랑이 더욱 넘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13)
이 크리스마스 기간동안에 사랑을 발견합시다.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경험합시다. 또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사랑을 발견합시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