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6일
성경: 고린도후서
4장 13절 – 5장 1절
제목: “낙심하지 맙시다”
이 세상 살면서 낙심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
때로는 큰
일로, 혹은 작은 일로, 우리를 낙심시킵니다.
-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도 있고,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찬송가 486장인,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의 가사처럼,
참 평안을 몰랐고, 참 쉬는 날 없었고, 참
죽을 일 쌓였습니다.
그러나, 낙심될지라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지는 마십시다.
-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우리의 갈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낙심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보면, 떨어질 落에 마음 心입니다.
-
글자 그대로
마음이 덜컥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도
동일하게 낙심을 lose heart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마음이 툭
하고 밑으로 떨어져 가라앉은 상태를 말합니다.
Collins Dictionary 에 의하면 lose
heart 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
To start to feel
discouraged or to lose interest in something, usually because things are not
progressing in the way that you hoped.
-
실망감을
느끼거나 무언가에 대한 관심을 잃기 시작하는 것을 뜻하며, 보통 당신이 바라던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하, 낙심
즉 losing heart 은 소망이 없어질 때에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인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낙심한 상태인 것입니다.
최근에 하키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토론토 메이플 립스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몬트리올에게 져서 본선 진출이 좌절 되었습니다.
-
실망스럽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
기량이 있는
젊은 사람들도 있고, 베테랑들도 구비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
1967년에 스탠리
컵을 이겼으니, 54년 동안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느끼는 낙심은, 그냥 그 순간에 일어나고, 하루 이틀이면 잊혀지는 그런
낙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직도 토론토
메이플 립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애간장이 타고, 절망감 속에 깊이 빠지게 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
밤잠을 설치고, 밥 맛을 잃어버리게 할 정도로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어제 당회에서 교우들의 동정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상을 당한 가정들도 있고, 아프신 교우들이 있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
그들이 경험하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코빗으로
인한 규제 때문에, 가족 중에 한 사람만
caregiver 의 자격으로 환자를 볼 수가 있습니다.
-
영어관계로
배우자 보다 자녀들 중 한 사람이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대로,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아는 것 만큼, 절망스럽고
낙심되는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하게 됩니다.
-
인간의 유한함을
직면하게 됩니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시길 바라지만, 그것은 바램이지, 현실은 참 다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충분히 낙심할 만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행전 18장에 의하면,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
거기서 18개월동안 사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에 다른 복음 전도자들이 들어 오면서,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의 고린도후서를 작성하여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일부에서는
고린도후서 10장 이하를 일명 “눈물의 편지”라고 하여,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0절을 보면, 바울의 사도성을 도전했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
“그들의 말이
그(바울)의 편지들을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또한, 외경
중에 Acts of Paul and Thecla 라는 책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바울의 외모를 다음과 같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
Bald-headed and
bow-legged as he was with those eyebrows that met and that over-sized nose…
-
대머리에, 다리는 바깥으로 굽었고, 그의 양
눈썹은 붙었고, 그의 코는 상당히 컸다…라고요.
중세기에 바울을 그린 그림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언변술과
외모에 더 관심을 가졌고, 더 크레딧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그러한 상황 때문에 오늘의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개인의 어젠더도 아니었고, 개인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자신이 전하고 가르쳤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손상이 되는 것이 가장 안타까왔고,
그에게는 크나큰 낙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바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5)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진실됨과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말대로, it
is not about me but it is about God 이었습니다.
낙심되는 경우만을 생각할 때에, 어떤 누구보다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자신의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그래서 극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만이
그의 소망이었다 라는 말입니다.
-
그리고 그의
믿음이 개념에 머물지 않고, 그에게 실제의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에 “그러므로” 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말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바울은 그가
처한 낙심되는 현실을, 더 이상 동일한 현실로 남겨두지
않고,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고 소망으로 인하여, 달라진 현실이 되게 하였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
잠시 받는
환난이 있지만,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은
그저 질그릇 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서 역사하실
것을 믿었고, 역사하시도록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입니다.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겉사람에 치중하는 것은, 속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 는 반증입니다.
질그릇에 치중하는 것은, 보배,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과 삶을 볼 때에, 믿음은,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과 직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바울은 그것을
고린도교회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가 가르쳤던
복음을, 바울은 몸소 살아내고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믿음은, 그의 처한 현실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
그에게 소망을
갖게 하여, 그가 처한 현실을 그저 참고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승화하고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하길,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imitate 하기 보다, present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 나타나도록 살아내는 것입니다.
-
매일 주님을
위해서 죽고, 매일 주님과 함께 살아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낙심시키고, 우리로 절망하게 하는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에,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겉사람이나 잠시 보이는 것 등을 의지하겠습니까?
아니면 아예 대처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
우리의 상황은
더욱 악화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소망을 회복하여, 일어서길 바랍니다.
며칠 전 인너보이스의 묵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
우리는 계속해서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 이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모든 문제, 우리가 대하여야 할 모든 도전,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하는 삶의 환경에 우리는 반응을 해야 한다. 물러서지
말자.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하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속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영원한 것들을 추구할 때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와 질 것이고, 영광의 중한 것들을 이루어, 왠만한 일에도 낙심하지 않는 묵직한 존재로 변화될 것입니다.
올해가 교회 창립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민 1세대,
그리고 창립할 때에 함께 했던, 합동 당회원들 중에 몇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됩니다.
지난 번에 설교할 때에 언급한 것처럼, 그분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또한 겉사람에 있지 아니하고,
또한 보이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번에 무궁화 양로원 모금에, 영어예배에서 상당히 많이 헌금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겉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작은 교회입니다.
-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속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영원한 것에 대해서 씨를 뿌려 왔습니다.
-
이번 무궁화
양로원 모금 운동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지켜오고, 씨름해 왔던 것들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그동안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에 대해서 헌신할 때에, 크신 능력으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우리가 뿌린 그 씨앗들을 자라게 하실 것이고,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
영어예배
뿐만아니라, 여러분들의 자녀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름다운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낙심도 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영원한 것들을 위해서 씨뿌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소망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