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주일
성경:
이사야 50:4-9
설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인생을 자신감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 자신감을 키워야 합니다. 자신감을 갖고 사는 것과 자신감이 없이 사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삶이 질이 달라집니다.
자신감이 있을 때, 삶의 도전을 훨씬 더 잘 다루며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하더래도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를 짓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삶을 도전적인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이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소심해 집니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을 보고 놀란다고, 작은 일에,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도 두려워 하며 불안해 하게 됩니다. 자신 있게 삶을 살기 보다는 늘 부정적인 것을 보고, 어두운 것을 보고,
불평하며, 원망하며, 삶을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도피주의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지요. 자신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될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고 살기 보다는 늘 변명하며 살던가 아니면 불평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이 없이 살아갈 때,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폐쇄적이고 염세적인,
Pessimistic
한, 닫혀 버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늘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기 때문에 매우 소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은 할 수 있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내적인 확신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번은 문제가 있는 아들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찾아왔었지만 그들은 그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마가복음 9:22)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23)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적인 확신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바울사도도 자기의 삶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예수님과 바울 사도 –
두 사람 다 자신감을 갖고 살았던 분들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기초를 세우신 분들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놀라운 믿음에 바탕을 두고 세워졌습니다. 죽음마저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으니 얼마나 자신 있는 생각입니까?
그렇다면 이 자신감이 어디서 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오늘 읽은 이 부분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이사야는 그들에게 이제 종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사야 49장을 보면 그것을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봅니다. 하나님을 그의 자식을 잊어버리지 않는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을 끌어 안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집으로 데려 오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이사야의 종의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 나오는 종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한 사람인지,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 신비적인 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종이 외칩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이사야 50:8)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이사야 50:9)
바로 이 종이 예수님과 바울이 가졌던 그런 자신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고 어느 누구도, 무엇도 그들의 자신감을 앗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믿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이사야 50:7-9)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니 누가 나를 대적하겠는가 라고 외칩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니 무엇이 나를 대적하겠는가? 어떤 도전도, 어떤 문제도 이 종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그는 외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진리 말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고, 이 진리가 바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 자신감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잘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느낌이 아닙니다. 느낌으로 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영적 자신감입니다. 이런 자신감은 우리의 삶이 잘 나가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그런 자신감은 아닙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이 자신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신다는데서
나오는 자신감입니다. God validates me.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인정 받을 필요도 없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자신감은 자기의 능력을 믿는데서 오는 자신감보다 훨씬 더 큰 자신감입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데서 나오는 자신감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하면 계속해서 가질
있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자신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나갈 때는 괜찮지요.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나하면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신감은 나 때문에 일어나는 자신감이 아니라, 나 임에도 불구하고 가질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보다 큽니다.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도전도 우리보다 큽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사야에서 나오는 종,
예수님, 바울 사도 – 그들의 자신감은 자기 자신이 자기 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데서 나온 자신감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자기 보다 더 큰 것에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능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자기를 넘어서서 나갑니다.
그들의 생각은 큽니다.
바울 사도는 이사야의 종과 비슷한 말씀을 그의 서신 로마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로마서 8:31)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3, 34)
그는 바로 자기를 끌어 안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런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감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데서 나오는 자신감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위의 말씀을 하시고 바울은 곧 이어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3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넉넉히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자신감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자신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 39)
이런 자신감이 있다면 인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도전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차갑고
냉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쉽게 마음이 변하고,
또한 잔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종도 그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 50:6)
그는
React 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도 하지 않았고, 복수심을 키우지도 않았습니다.
Let them be.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인들은 오늘 본문을 예수님과 연결하여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욕을 받았고, 침 뱉음을 당했고,
욕을 먹었고,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자신감을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의 자신감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예수님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데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라고 하는 그 진리를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에 나오는 종도 그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이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는데 누가 나를 대적할 것인가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짓밟고, 무너뜨리고,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감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 안에서 이 자신감을 먼저 찾으십시오. 이 자신감이 여러분들을 든든하게 붙잡아 줄 것입니다. Every situation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Calm Confidence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고요함 가운데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여러분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작은 일에 분노를 내고,
조그만 문제로 걱정을 하게 됩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고, 고통이 임할 때,
그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내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불의와 싸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며 살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고난주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종려주일입니다. 종려나무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을, Triumphant Entry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지신 자신감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고통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메시지는 십자가의 고통이 예수님을 무너뜨릴 수 없었고 오히려 그를
섬겼고,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막 시작하지 마십시오.
하루를 자신감을 먼저 키우고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세상의 어떤 도전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십시오. 그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함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하루가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