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6일
성경:
로마서 8:1-11
설교: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영을 따라 사는 삶과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의 확실한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마서
8:5)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삶을 말합니까?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나 사회의 규범을 어기며 사는 것을 말합니까?
사람들은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의 구분을 편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삶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와 봉사하고, 좋은 일을 하는 삶이고
육적인 삶은 그렇게 살지 않고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런 삶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겉에 보이는 삶의 모습을 보며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의
차이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바울은 더 깊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은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특정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뜻합니다. 그림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칼 융은 그림자 자아, Shadow self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은 이 그림자 자아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모두가
다 이 그림자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면입니다. 우리가 가기를 원치 않는 곳이지요. 생각하기도 싫은 곳입니다. 매일 매일 쓰고 살아가는 우리의 가면뒤에 숨겨져 있는, 보이고
싶지 않은 자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생각할 때, 부끄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용납이 안되는 그런 자신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용납이 안되는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 속에 말할 수 없는 내적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로부터 기쁨을 앗아가고 우리에게 남은 모든 자신감을 다 빼앗아 갑니다. 우리로부터 빛을 앗아갑니다. 이 그림자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보통
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비밀스러운 곳에 우리가 잘 감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집어 넣고 자물쇠로 잠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속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숨겨 버림으로 그것을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꽉꽉 눌러 보이지 않게 만들었지만 이 육신의
실체는 우리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더 강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잠가놓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그것을 묶어 둘 수 없습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고 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어두워지고 더 진하게 우리를 짓누를 것이다. (칼 융)
눌러놓고,
부인하고, 숨겨놓는 것 -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눈감고 아옹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영향력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분노를 만들어 내고,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차갑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Damaged good - 망가진 물건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삶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소위 강퍅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그림자 자아가 집단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집단의 그림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의 좋은 예가 바로 유대인 학살, 홀로커스트 입니다. 한 나라
전체, 한 문화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질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강퍅해진 인간의 모습을 잘 보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이 구절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태복음 11:17)
영적으로
메마르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육신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더이상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인격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진짜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위선이 우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웃음은 가식적인 웃음이 되어 버렸고 우리의 친절함은 그저 사회적인 제스쳐에 불과합니다. We
are not real.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고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신의 모습이고 육신에 따라 사는 삶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육신에서 절대로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그림자 자아도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면도 우리입니다.
그것이 좋던 싫던,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더 숨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것이 더 여러분을 주장할 것입니다. 없애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아무 힘도 없구나 하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답은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답은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답은 그 육신이 당신을 섬기게 해야지 그것으로 하여금 당신을 주장하는 주인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육신에게 힘을 주지말고 그것이 당신을 섬기게 하십시오.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Jorges Luis Borges 라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모욕받는 일, 불행스러운 일, 수치스러웠던 일,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진흙같은 것이고 그 주어진 진흙으로 우리는 우리만의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Jorges Luis Borges)
좋은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력은
좋은 것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력은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나쁜 것, 그 모든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육신 마저도,
우리의 우리의 육신, 어두운 면 마저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만져질 때, 그 미치는 영향력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를 파괴시키기 보다는 더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14:16)
여러분
속에 성령이 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육신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영향력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 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너무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왜 평화를 가지지 못하는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모든 걱정, 근심, 두려움의 원인이고 근원입니다. 내가 바로 나 자신의 고난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육신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빠져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편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육신을 따라 사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여러분의 어두운 자아로부터 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고아가 아닙니다. 고아처럼 외롭게,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성령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외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15, 16)
이제
여러분은 성령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모습을 다루실 수 있습니다.
어두운
생각이 여러분에게 몰려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죄와 판단이 당신을 짓누를 때, 그것이 여러분을 어두운 곳으로 몰고가게 하지 마십시오. 바울
사도는 이제 더이상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8장을 시작하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성령이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빛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소망으로 가득차고, 자신감과 창조력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더이상 수치가 없고, 두려움이 없고, 죄책감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치
대신에 자신감을, 두려움 대신에 용기를, 죄책감 대신에 의로움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피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게 되었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