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일
성경:
로마서 6:12-23
설교:
드디어 자유롭게 되다
죄
-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은 그런 토픽은 아닙니다. 별로 깊이 생각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또한 다루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피하고 생각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고 간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인가? 죄는 법을 어겼다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죄는
그 세력에 우리를 묶어두는 어두운 힘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종노릇한다, 자유롭게 되었다 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십니다.
죄는
우리를 아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이런 무기력함을 로마에 보내는 바울 사도의 서신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14-20)
마지막
문장이 죄의 속성에 대해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20)
죄는
그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어두운 세력입니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어두운 힘입니다. 여러분의 자긍심을 무너뜨립니다. 자신감을 앗아가 버립니다.
여러분을 정죄합니다.
이것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속에 있는 죄가 이것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책임 회피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내재하며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죄의 힘, 그 힘의 현실을 보여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힘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마치 그것에 묶여서 종살이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암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의
기쁨을 앗아가고 우리를 두려움과 어두움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 속에 죄책감을 조성하고 이 죄책감은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 뜨립니다.
언제나 검은 구름이 우리 주위를 맴돕니다.
거룩한
비젼이 있고, 아름다운 꿈이 있고, 이상이 있지만 이 어두운 세력은 이 모든 것들을 부서뜨립니다. 죄가 여러분을 정죄할 때,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비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좋은 일을 했다고 우리의 죄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열심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우리 속에 있는 죄가 뽑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크리스챤 배경 속에서 자랐다면 하나님의 계명이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크리스챤 배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도덕율이 (Moral code)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법을 갖고 있고 그 법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데,
법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 - 그것이 도움이 됩니까?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 - 그것이 도움이 됩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치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에게 우울해하지 말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막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람에게 화내지 말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까? 이 어둡고 부정적인 힘이 우리를 마음대로
주장하게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까?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어둡고 부정적인 힘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충분한
돈이 있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 그것이 진정한 자유는 아닙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 - 그것이 진정한 자유는 아닙니다.
자유는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욕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미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분노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자격지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6:14)
죄의
힘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은혜의 힘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Release 하셨다는
말입니다. 마치 막힌 물꼬를 틀어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은혜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우리를 받아들이겠다는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이런 놀랍고 신비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1)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단하셨을 때,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기로 결단하셨을 때, 누가 우리를 고소하겠습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3, 34)
이
말씀을 하시고 바울사도는 이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 39)
하나님께서
아무리 여러분이 연약하고 부족해도 여러분을 받아들이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주 간단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간단한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 은혜의 능력이 여러분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은혜의 힘이 바로 죄의 힘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힘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죄의 힘을 몰아냅니다. 그때야 비로서 여러분은 자유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자유로와지고 정죄함에서 자유로와지고 자기자신을 늘 증명해야 하는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함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하여 줄 때, 여러분은 자유함을 경험합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주시고 사랑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더 큰 자유함을 경험하시겠습니까?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힘입니다.
드디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