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3년 8월 20일)
마태복음 15장 21-28절
“무엇이 큰 믿음인가?”
오늘 본문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본문입니다.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때문입니다. 26절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리라” (마 15:26)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과는 동떨어진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믿고, 사랑하는 예수님이라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어려움을 두고 고민하다가, 본문 전후의
문맥을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5장
앞부분과 뒷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어렴풋이 예수님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21절로 28절인데요, 그 앞부분에서는,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그러니까 율법주의적으로 다루고 있었지,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따르려고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 15:7-9)
이런 지적과 도전을 받게 되니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좋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꼬투리 잡아서,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이 등장하고 있는데, 어떤 일이 결론적으로 일어났습니까?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이 가나안 여인을 보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절입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8)
사 복음서를 통틀어서 오직 오늘 본문에서만 “믿음이 크도다”
하시는데, 그것도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에게 하시고 있다 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한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어를 보면 “여자여”
앞에, Oh 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Woman, great is your
faith!” 라고 한 후에 감탄사를 뒤에 넣었습니다. 마치 주변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이 여인에게 있는 믿음을
돋보이시려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결론을 내리신 후에 오늘 본문 바로 이어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셨는데, 수많은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29절로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15:29-31)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하는 부분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유대인도 아니고, 종교지도자들도 아니라, 이방인들 그러니까,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목격한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병 고치는 역사를 보고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후
문맥을 볼 때에, 그러니까 더 큰 그림 속에서 오늘 본문을 볼 때에, 예수님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그 당시 기득권층과 중심에 있는 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에
대한 교만과 편견을 깨뜨려 주시고자, 예수님은, 변두리 사람조차도 될
수 없는, 이 가나안 여인을 통해서 믿음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에 관하여, 아무런 능력이나 영향력이
없는 종교지도자들보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개처럼 취급을 받는, 이 가나안
여인에게 더 큰 믿음이 있다고 하신 것은, 상상치도 못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 속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끌어 올려 주시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셨고,
그것을 모든 자들이 보고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인은,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자였고, 이방인이었고, 사회적 지위도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절실히 찾고 간구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결핍과 결여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시작점이다 라는 것입니다.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종교심, 자기의, 학식과 재물도 아닙니다.
그런 것에 크레딧을 주지 마십시요. 집착도 미련도 갖지 마십시요.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심령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에게 오히려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오늘 본문 세 군데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보석과도 같습니다. 겸손하고 간절하고 용기를 내고 포기하지 않고, 지혜롭게 말하고 있습니다.
22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7절: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 속에서 소중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믿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작은 믿음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수님은 이것을 귀하게
여기셨고, 만방에 알려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비하신 예수님을 믿기에, 이 여인은 외치기만 하지
않고 행동하며 나아갔습니다. 한 두
번의 저항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 문화와 상황에서 거론한 것이지만, 자신이 개와 같은 존재로 불리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용기를 내어 간구할 때에,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 15:27)
이것이, 큰 믿음이 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큰 믿음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라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딸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 여인의 큰 믿음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11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을 침노하는 듯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믿음이
있는 자들이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회개 즉 마음을 고쳐 먹으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고 하시자,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시겠냐 하면서 하나님께 의인이 50명이 있어도 멸하시겠습니까? 하실 때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50에서 45명으로, 다시 40명으로, 다시 30명으로, 다시 20명으로, 마지막에는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은 마음을 고쳐 먹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지요.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배척 받을 때에, 오히려 이방인들에게도 흘러 넘치게 되었던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문을 실제로 여셨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오늘 가나안 여인에게 있었던
이 큰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큰 믿음의 시작점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약하다고, 소외되었다고,
이민자라고, 소수 민족이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에
대해서도, 그런 정치, 사회적인 잣대로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다. 그것은 힘의 원리로 믿음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예수님만을 찾고, 간구할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조건들입니다. 그런 조건들이 영적인 조건들이 되게
하십시다.
그래서, 더 이상, 스스로 배척하지 마십시다. 이 사회에서 제공하는 의료 보험, 혜택, 지원에 대해서, 스스로 거리를 두지 마십시다.
이 사회에 구석 구석에 있는 시설, 공원,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스스로 담을 쌓지 마십시다. 언어
때문에, 상황 때문에, 포기하지 마십시다. 이 여인처럼,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비로우신 예수님 만을 믿고 구할 때에,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일들일 일어날 것입니다.
겸손하되 용기가 있고, 끈질겨서 지혜가 풍성한 그런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통해 강같이 이 세상으로 흘러가길 바랍니다.
찬양: 주님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