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3일
성경: 로마서
12:9-21
설교: 저주를 축복으로
오늘 저희가 들은 말씀은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것을 매일 읽고 마음에 새겨도 좋은
그런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바울 사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말씀들은 크리스챤의 마크, 증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싸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손대접 하기를 힘쓰라.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참 간단하고 쉬워보이는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하지 못합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를 하고 우는 자들을 보면서도 관심이 없고 같이 울어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알며 삶을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도 느끼고 아픔도 함께 느끼며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그런데
바울 사도는 가장 중요한 것,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주제를 마지막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영적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과 신앙인의 차이가 여기서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축복합니까?
여러분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우리의 몸이 저항을 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외칩니다. No Way!!! 할 수 없다고
소리 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어렵지만 그들을 도저히 축복할 수는 없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가수인 Taylor Swift는 이렇게 노래 합니다. There’s nothing I do better than revenge! 내가
복수하는 것만큼 잘하는 것은 없다. 맞습니다. 그 마음을 잘 압니다. 복수라고 하는 것은 연습할 필요도 없습니다. 벌써 너무 잘하고 있고,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치면, 나도 같이 칩니다. 누가 나에게 해대면 우리도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해댑니다. 누가 나를 욕하면 우리도 같이 욕합니다. 누가 나를 모욕하면 우리도 같이 모욕합니다.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당했으니 당연히 뭔가는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요?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좋지 않으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간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모두 장님이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다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망하고 여러분에게 잘못을 한 사람도 망합니다.
실상, 모세가 눈에는 눈으로 라고 하는 가르침을 주었을 때는, 공평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누가 당신의
눈을 빼어 갔다면 가서 눈만 빼와야지, 코도 뽑고, 귀도 뽑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야만인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눈 하나를 뽑았으면
하나만 뽑아야지 두개를 뽑아서도 안된다 라는 공평의 원칙을 가르쳐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모세의 윤리였습니다. 즉, 공평의 윤리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더 높은 윤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1)
아주 다른 아이디어를 가르쳐 주셨고, 아주 다른 표준을 세워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좋은 이유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악한 일을 하면,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배신을 하고, 뒤에서 욕을 하고, 거짓된 말로 우리를 모략했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신앙이 있던 없던, 상처를 받습니다. 아픕니다. 아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필요 없습니다.
이와같이 누군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면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악은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악은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 놓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속에 어두움을 심어 놓습니다. 아프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아주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갑니다.
상처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뭔가는 해야 여러분 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뭔가 한마디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한마디 해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보다 더 마음이 찜찜해집니다.
그것이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입니다. Kevin Carlsmith, Timothy Wilson, Daniel Gilbert. 연구를 했는데 결과는
복수를 한 사람들이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도움이 될줄 알았는데, 그 반대, 오히려 그 사건에 더 매이게 되고,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어, 오히려 더 묶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기분은 시원해질지 모르나, 결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나쁜 결과만을 가져오게 됩니다.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그 상처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우리 속에 만들어 놓으면 우리는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상처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바로 악의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악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악은 우리를
아프게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이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듭니다. 물론, 모두가 다 상처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Dr. Joseph Burgo 가 그의 책 당신이 아는 나르시시스트 라는 책에서 더 자기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 속에 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상처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상처를 건강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의 상처를 다룰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 Mechanism을 준비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우리의 상처를 다룰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속에 강하게 존재할 때, 여러분의 상처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속에 강하게 역사할 때, 여러분은 악이 그것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은혜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여러분을 악에서 구하여 줄 것입니다. 여러분을 악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저주를
바꾸어 축복이 되게 할 것입니다.
상처 받는 것 - 물론 아픕니다. 그러나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 때, 행복은 사라집니다. 기쁨은 사라집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여러분에게 행해진 악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루십시오. 악을 다룰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으로는 악을 이기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의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입니다.
십자가 그 자체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이 바로 선으로 악을이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어떤 것도 여러분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힘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