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3년 12월 3일)
이사야 64장 1-9절
설교: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다
소망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망이 있을 때에, 우리는 앞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소망에는 그런 힘이 들어 있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으며,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예배에서 김목사님은, “소망은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시면서, 소망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볼 때에, 소망에 의한 삶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소망이 주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인가 질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도전과 역경 앞에서 쉽게 절망하고, 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소망 없이 살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살지만, 목적이 없고, 과정도 없으니, 진정한 열매도 없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살아도 삶의 흐름과 방향이 없는 것도, 소망 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그리고 인생을 그럴듯하게 꾸려 나간다고, 소망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게 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소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은 소망이 힘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가기 보다, 우리가 스스로 소망을 manufacture 즉 제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서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소망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의 삶의 질은,
무척 달라졌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무척 달라졌어야 했을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담대하고, 용감해야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4)
“보이는 소망”이, 우리가 소망이다 라고 여기는 것들이 아닌가요? 우리가 만들어낸 소망이, “보이는 소망”이 아닌가요?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추구하기 보다, 당장에 이익이 되는 것들을 취득하고 누리면서, 그것을 소망이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대한 돌봄에 심혈을 기울이기
보다, 당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들을 해 나가면서, 그것을 혹시 소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wishful
thinking입니다. 희망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바람직한 상황과 조건은 소망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에 근거한 소망은, 우리 인간의 한계와 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악순환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되기 보다, 더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소망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이끌어 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힘이기 때문에, 우리를 끌고 가며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억압에서 자유로
나아가게 합니다. 소망은, 그러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녕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선의 끝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wishful
list 가 우리의 시선의 끝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현재의 삶이 살아나고,
의미가 새로워지고, 고상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은 세상이 주는 소망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슬라이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에는, 찬란한 빛과 기쁨과 충만함이 가득차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삶을 의연함과 진중함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기자는 소망에 대해서 유사한 말을 남겼습니다.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잠 10:28)
하나님만이 소망이다 라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인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이 되기에,
특정한 삶의 모습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예가 몇가지로 나옵니다.4절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7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인해서, 자신의 현실이 살아나니,
그러니까, 어둠이 빛으로 인해서 밝혀지니, 하나님을 더욱 찾고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실체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일어나니,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는, 그래서 좌절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이심을 믿지 못하는 것이 자기의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니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회개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소망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회개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소망을 만들려고 했던 것들을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에 의한 회개는, 우리 자신의 현실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곳이 어둠이든,
실패이든, 좌절이든, 우울한 감정이든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확신하므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로 방향전환을 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소망이 가져다 주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런데,
소망의 사람은, 그러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회개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누구보다 담대히,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이 되는 자는, 회개를 지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인데,
어찌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8절에 “그러나” 가 전환점이 되어,
소망이 있는 자의 부르짖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8-9절)
이처럼, 소망의 사람은요, 회개도 제대로 하고, 간구도 제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회개와 간구가
종교적인 행위나 감정에 의한 행위가 더 이상 아니라,
존재의 갈망이고, 영적인 갈망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셔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새로운 도기를 만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 깊고,
지혜롭고, 온유하게 변할 것입니다. 진정한 강한 존재로 거듭날 것입니다.
Albert Einstein 은 소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We need never be hopeless
because we can never be irreparably broken”. “우리는 결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동일한 영적인 경험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주어진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번째 주일이며, 주제는 소망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귀한 계절에, 하나님의 강림과 재림을 기다릴 때에, 회개와 간구가 우리의 삶의 내용이 되어서,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 안에 더욱 더 충만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