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6일
성경: 누가복음 18:1-8
설교: 기도하는 삶의 세기둥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이 비유의 이야기이고
메시지 입니다. 이 세가지는
기도하는 삶의 세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 우리의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것을 믿으셨습니다. 큰 결정을
하실 때 마다, 예를 들어, 제자를
뽑는다던가, 아니면 겟세마네에서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서 의미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도를 하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4)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confidence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기도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을 경험하지 않고,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열어주는가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enjoy
할 만한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머리로 기도의
현실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모습을 보고 기도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눈에 보이게
obvious 하게 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 기도를
사용하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를 쓰시는 분은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도 노트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의 기도를 사용하여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응답이 되었는지도 몰랐고, 응답 같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가장 좋은 응답을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기도를 우리의
lifestyle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어쩌다 하는 그런 행위의
모습이 아닙니다. 기도는 lifestyle입니다.
기도할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기도해서는 안되겠지만
기도를 습관화 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는
삶을 사십시오. 모든 문제를
기도하는 태도로 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여러분이
삶의 모든 해결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시는지 아십니까? 내가 모든 답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평안과 고요함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또한
그런 힘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평안과 고요함을 줍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걱정하기
보다,
하나님의 좋은 손에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보다 더 큰 평안과
고요함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삶은 평안과 고요함의
삶입니다. 기쁨, 기도, 감사 이 세가지는
같이 갑니다. 기도하는 삶을
살 때에,
여러분의 삶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뭘 더 바라겠습니까?
셋째로,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삶을
살다보면 반드시 여러분이 경험하는
것이 실망일 것입니다.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기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신앙을 잃기도
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에게
분노도 일어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본문에 나오는
나쁜 재판관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실망을 하는 이유가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응답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드온이 말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사사기 6:13)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지 못하였으니
그는 실망했던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세번 그의 가시를
뽑아 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늘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할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낙심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아닙니다. 그때 필요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가지셨던 믿음과 같은 믿음
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 18)
항상 좋은 결과를 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해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는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기도는 끝을
봅니다.
모든 것의 끝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끝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