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8일
성경: 마태복음 1:18-25
설교: 우리의 최선이
하나님의 최선이 아니다
영국의 영화배우인 Imelda
Staunt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
can only do your best. That’s
all you can do. And if it isn’t
good enough, it isn’t
good enough.”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그저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충고이기도
합니다.
뭘 어떻게 더하겠습니까?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부족한대로 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World Cup Final이 지금
진행중입니다. 모든 팀 들이 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국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최선이 충분지 않았다는
것을 경험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상실감, 실망감,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 몰려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최선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말입니다. 종종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
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편리한 설명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에 문을 닫아버린
편안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냥 현실을
힘없이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합리적인 정당화에 불과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우리의
게으름과 두려움을 감추는 어떤
coverup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주
선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각 복음서에서 다른
각도로 듣게 됩니다. 누가는 마리아의
시선으로 예수님이 탄생했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갈등, 마리아의
경험,
마리아의 괴로움 등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요셉에 초점을 두고 그가
어떤 경험을 하였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약혼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평생 같이 살아갈 꿈을
갖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기는 아직
그 여자와 관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실망을 했고, 아마
매우 화가 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 심한 행동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고,
심지어 돌에 맞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모양으로든 마리아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기의 실망, 상실감, 분노를
끌어안고 그녀를 그저 조용히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태복음
1:19)
그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최선은 하나님의 최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최선이 하나님의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사를 보냅니다.
천사는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0, 21)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어떤
누구를 책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마태복음
1:22)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이사야의 꿈을 묵상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또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마태는 임마누엘의 뜻을 설명하며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놀랍게도, 요셉은 그의 최선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의
최선이 하나님의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한 것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24, 25)
요셉은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핑계로 삼아 쉽게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이 아이를 위한, 또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이래서 인생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최선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최선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선이
끝날 때, 그때 하나님의
최선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선을 위해 room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했다고 문을
닫아 걸어놓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받아들이시고 기다리십시오.
인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은 더 많은 부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맞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충분치 않았다면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옥하게 하지 마십시오. 죄책감을 갖고
살지 마십시오. 그러나 문을
닫지는 마십시오.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최선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최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삶이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아기를 갖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가 자기가
최선을 다한 것으로 모든
것을 중단했다면, 문을 닫았다면
그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놀랍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큽니다. 인생은 그저
선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큽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뭘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행함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에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여러분이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낙망하고 계십니까?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인생의
더 큰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