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2년 12월 11일)
마태복음
11장 2-11절
설교: 천국을 기다리는 삶
우리 믿는 사람들을 천국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꿈꿀 수 없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천국이라 함은, 죽은 다음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장례예배를 천국환송예배라고도 하지만,
천국을 바라본다 라는 것은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민을 온 것도,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이든, 경제적인 이유이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천국은, 그 의미가 제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보는 천국은, 많은 경우에 개인의 안녕과 복지 만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 그것만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을, 영어로 Kingdom of Heaven 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마태복음에서만 나오는 표현으로서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이라는 단어 대신에 하늘을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아무개 한 사람의 안녕과 복지보다, 하나님의 뜻과 통치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 천국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천국이 임하여도, 천국을 깨닫지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동참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며 추구하는 사람들일까요?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3절)
그런데, “기다리오리이까”
의 기다리다는요, 원어로, watch, look for 의 뜻이 있습니다. 보는 것에 관한 단어이고, 거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기다린다는 것은, 곧 천국을 look for 찾아보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간절한 기대가 있고, 열망이 들어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저항이 들어 있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7절과 8절 말씀에서, 너희들이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나갔더냐
라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7-8절)
흔들리는 갈대는 세상에 묻혀서 살아가는 존재를 뜻합니다. 풍파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존재입니다. 소명이나 철학보다, 순간 순간의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은, 이 세상의 가치와 다른 것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천국은 이 세상의 연장선이
아니기 때문이며, 천국은 이 세상에서 몇가지를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천국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은용, 그의 삶이 천국의 가치를 살아내게 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내 눈이 바라보고 찾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기 때문이며,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가치와 다른 천국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우선, 천국의
가치는 막연하지 않습니다. 종교성에 관한 것도 아니고, 윤리적인 것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슬로건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천국의 가치입니다. (슬라이드) 하나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5절)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회복이 천국의 가치이며 천국의 주관심사 입니다.
이것은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역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61:1)
그러기에 예수님은 오늘 본문 6절에 이어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6절)
우리가 만약, 여전히 삶의 가치가,
세상 것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긍휼과 공존과 평화의 가치보다, 경쟁과 억압과 폭력의 가치를 선호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실족한 사람입니다.
연역한 자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나누려고 하는 것이, 탐탁하지 않고, 불편하고, 어리석어 보인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실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모르는 소치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것도 모르는 소치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나라입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된다는 말은, 죽음 뒤에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생명으로 여기며 인생을 살아간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천국 백성이 무엇인지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1-3)
천국 백성의 삶은, 외로운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때로는 비난도 받고, 무시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수님만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세상 풍조를 역행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길을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아신다 라는 것이 은혜가 됩니다.
오늘 세례 요한을 보고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슬라이드)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0절)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했던 그 모든 일을 아시고 그를 높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들도 그보다 크니라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1절)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세례 요한은 준비했겠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환영하며 삶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세례 요한 보다 큰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삶 가운데 그것을 실천하려고 갈등하며,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자들이 있다면, 비록 그들이 하는 일이 적다 할 지라도,
그런 사람은 오히려 세례 요한보다 큰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런 사람이고, 마더 테레사도 그런 사람입니다. 이벤졀 홀 사역을 십수년
감당하고 있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은 거창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연약하고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함께 하여 주고, 도움을 주는 자라면, 그런 사람이 예수님에게는 귀하고도 귀한 사람이며, 진정한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새교우 환영회를 3년만에 했습니다. 새교우라고 하면, 신앙의 연조와는 상관없이, 이 교회에
새로온 것 만으로도 많은 면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오랫동안 했어도,
Vulnerable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환영하고 돌보는 것 자체가,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새교우들은 목회자나 장로님들, 아니면 새가족위원들만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런 분들이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진 하나 보시지요. 어떤 분이 그러십니다.
이렇게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요.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섬길 때에, 공동체 즉 전체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2023년에는, 마다가스카르 단기 선교가 5월에 예정되어 있고, 원주민
선교도 8월에 있을 예정입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4 개의 주요 부족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바첼리오 부족의 언어로 성경이 이번에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4백만명이 되는데 전체 인구의 12 퍼센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만권의 성경을 만들어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급했다고 엄선교사님이
그러시는데, 큰 기쁨이 교회들 위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일에 우리가
동참할 수도 있다면 그것 또한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대강절이 정점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여러분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긍휼의 사역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천국을 기다리는 삶의 모습입니다. 뜻깊은 대강절과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