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3년 2월 12일
고린도전서
3장 1-9절
누가 신령한
자들인가?
오늘 본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나(바울)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6절)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우리 각자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완성시켜 주신다 라고 알고 있고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다음 구절인 7절과 함께 볼 때에 그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7절)
어떤 기계적이고 공식적인 생각의 흐름이나, 일들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바울은 말하고자 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theocentric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된다 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중심이 되십니다. 그 어떤 인간도
중심에 서 있지 못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1장을 시작할 때에 교회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심을 언급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고전 1:2)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자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인이라고, 성도라고, 그들의 의식 속에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 교인들은 전혀 안 그렇지만, 혹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를 실제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말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들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식하고,
사랑하기 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세상
풍조를 따라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체면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해지지는 않은지요? 그럴 때에,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들처럼, 그리고 어린아이들 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미성숙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지혜로운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지혜롭다 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게 어리석고 미성숙하니, 오늘 본문 3절 처럼,
교회 안에서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3절)
시기는 insecure 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요, 그 결과는 분쟁인 것입니다. 자존감이 없고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보다는, 경쟁 구도에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싸움닭처럼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남을 짓누르고 올라 서려고
합니다. 그러니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주인의식이 있는 것과
주인행세만을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집착하여 주인행세만 하여 좌지우지 하려는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볼 때에,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신앙으로 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품고 기도하는 가운데 인내하는 모습을 볼 때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 같고 육신에
속한 자의 반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1절에서 말하는 신령한 자들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1절)
그런데, 이 신령하다 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오해를 불러다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함은, 무슨
산신령을 연상하게 하거나, 또는 종교적인 모습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적이다 라는 것은,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늘 가까이에서 동행하니 어찌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육신에 속하고 어린아이 같은 자들을 품고 돌보고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에 대해서 좀더 살펴 보십시다. 7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7절)
바울은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로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씨를 여기 저기 뿌리고
심었을 것입니다. 가르침의 씨, 기도의 씨, 섬김의 씨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한
것 이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니, 어찌 “아무 것도 아니로되” 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영적인 고백인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린 후에 물고기가 두 배에 가득차는 경험을 한 후에,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10)
계속해서 바울을 살펴 보십시다. 본문 5절에서 바울은, 아볼로와 함께, 그들을 “사역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5절)
그런데 이 “사역자”
도 오해를 사게 합니다. 이 사역자는 원어로 diakonos 라고 하는데 servant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servant 입니까? 하나님께 servant 가 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이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바울에게 속했다, 아볼로에게 속했다 하면서,
분파를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정치적인 힘이 주어지게 해서 그것을 사용하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 바울과 아볼로는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환호에 우쭐거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비난에 움츠려
들지도 않고, 오직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께만 두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영적인 부모처럼, 그들을 품으며 인도해 주었던 것입니다. 밥 대신 젖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사람들을
보고 신앙생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기를 격려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속했다, 아볼로에게 속했다 하지 말고, 너희는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했다고 하고 또는 부다가 말했다고
하는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지 말고, 달을 바라보라 라고요. 바울이 이런 분이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이 진정 신령한 사람이요, 성숙한 사람이요, 지혜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servant 가 아닙니까?
교우 여러분, 어떤 모양으로든지,
시기와 분쟁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다시 어린아이와 같고 육신에 속한 자들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지껏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같은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고전 15:50)
신령한 자, 하나님만을 섬기는 servant
가 되십시요. 바울과 아볼로 처럼 하나님의 종이 되십시요.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이 교회를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방법과 역사로 친히 당신의 교회를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이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