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
성경: 요한복음 20:19-31
설교: 부활의 능력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12)
믿는 자들에 대한 대단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감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는 것만해도 벅찬데
말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제자들에게 대해
그렇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능력한 제자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제자들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약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믿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이
수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 다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요한복음
20:19)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제자들을 봅니다. 닫혀진 문들
뒤에 숨어 떨고 있는
제자들을 봅니다. 그런데 바로
전 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그들에게 전하는
것을 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한복음 20:18)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닫혀진
문들 뒤에 숨어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연약하고, 두려워하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봅니다.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에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불행하게도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보았다고 도마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요한복음 20:25)
마리아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도마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도마가
제자들이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예수를 자기 스스로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는
도마, Doubting Thomas라는
별명은 어떻게 보면 불공평한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마도
제자들처럼 믿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보다시피, 연약하고, 눈이
감겨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을 때, 수차례 그들에게
본인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그 놀랍고
신비한 진리를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정말 그들을 보며 예수님은
너무나도 답답해 하셨습니다.
한번은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17)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들을 믿었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이 답답해
하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믿었습니다. 그러니
답답해 하는 것과 그들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 답답함을 갖고 있어도
그들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21)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지금 예수님은 그 믿지
않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가 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자기가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단한 기적을
행하셨고, 초자연적인 치유를 하셨고, 상상치도
못하는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유대
땅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유대 땅이라고 하는 그 반경
속에서 예수님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유대, 갈릴리,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이방인 지역
-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보고 사람들은 대단히
놀랐고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곧 예수가 한 일, 그가
가르친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은
예전처럼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다음 세대, 그리고
또 그 다음 세대까지 기억되고, 높이 칭송을
받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 한 것은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온 세상에
선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나오는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나 나와
같은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치도 못하는
이런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퍼져
나갔습니다. 부활의 능력이 만지는 것마다
살아나는 역사를 만들며 퍼져
나갔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죽은 것을
살렸습니다. 어두움에 빛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속에
죽은 영을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이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1,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제
성령을 통하여, 부활의 능력이
계속 퍼지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부활하신
예수의 몸의 증거를 보는 것으로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처음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했었습니다. 시작점이니 그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그것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도마에게 마저도 그것이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아나신
주님의 몸을 보기 원했죠. 증거를
원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요한복음
20:25)
도마는 육체적인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그의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요한복음 20:27)
그런데 도마는 자기의 손가락을
못박힌 손에 넣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듣자 마자 그는
단순히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부활의 육체적인 증거를
요구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이상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충분했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부활의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역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부활하신 주님의
육체적인 몸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육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시기 위해 계속
나타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의 증거를 통하여
역사하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입니다. 더이상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는 못하지만,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는 증인들의 증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9)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의 예언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할 때마다,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부활의 능력이 그들의 증거를
통하여 역사하였습니다.
우리는 처음 증인들의 증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거에 힘이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4 복음서를 공부하였습니다. 각 복음서마다
그 저자의 증거,
witness 였습니다. 부활의 능력이 바로 그들의
증거를 통하여 역사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부활의 능력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당면하는 도전을
이겨나갈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을 가져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요한복음 20:23)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가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죄의
묶임에서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에 대해
앙심을 품지 마십시오. 큰 마음으로
그들을 끌어안고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명령한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용서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