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5년 4월 13일)
빌립보서 2장 5-11절
오늘 본문이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인데요,
5절을 제외하고 6절로 11절을 따로
구분하여, Christological
Hymn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찬송시”라고요.
이 찬송시는 바울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찬송시였다고
대부분 신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데요,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에 포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찬송시”의 주요 내용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니, “자기를 비워”
8절을 보니 “자기를 낮추시고”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곳에서 내려 오셔서 십자가까지
지신 그리스도입니다. 특히 “자기를 비우다”를 원어로 keno라고 하는데 여기서
kenosis 라는 우리에게도 그동안 알려진
신학적인 용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비우심을 닮으라고 하는 바울의 메시지는 2천년 전이나 오늘날 우리에게 모두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메시지 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계급사회이고, 신분의 차이는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귀족이 노예가 될 수가 없었고 되어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시작된 기독교와 교회들은, 복음으로 인하여 그 사회에 혁명을 일으켰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 3:11)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요즘의 세상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비움에는, 겸손, 양보, 배려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점점 더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코빗 이후에 그리고 요즘의 미국 관세 전쟁 등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더 가지려고 하고, 더 쌓으려고 하고, 더 휘두르려고 합니다.
Aggressive 하고 Greedy 합니다. 공격적이고
탐욕스럽습니다. 어느 때보다 권력만능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더 이상 상식이라든지, 영원한 가치가 되는 정직과 선함이라든지에 대해서 포기하고 사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의 결과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우리가 가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갈등과 반목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첨예화될 것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더욱 더 억압당하고, 소외되고, 착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이나 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승자도 패자도 없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라는 바울의 메시지가 여러분들에게는 어떻게 들리고 있습니까?
신앙은 따로, 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따로 있는 것이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신앙이 밥 먹여 주냐?
하면서 좋은 말씀이지만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내보내겠습니까? 아니면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잘 안되어서 황망한 마음입니까?
십자가의 도가 이 세상의 지혜로는 미련해 보여도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고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8)
여기서 예수님의 비우심을 좀더 살펴보십시다. 예수님은 그저 비우시고, 내려놓고,
겸손해지신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우심은, 그리고 낮아지심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윤리 도덕적인 겸손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겸손입니다. 윤리 도덕적이고, 체면과 형식에 의한 겸손은,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는 가운데
행해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우심과 겸손은, 인류를 사랑하기에,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다 내려 놓고, 부으셨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에게 그는 편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딛후 4:6-8)
바울도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라는 것은 제물 위에 술을 붓는 제사를 뜻합니다. 남김없이 다 부은 바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으로 비우고 부었다 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비우고, 내려 놓을 때에,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개인주의로 치닫고, 모든 것이
on my term 즉 내 상황에 따라서 돌아가야
하는 세상에, 한 줄기 소망의 빛 줄기가 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 있는데 토마스 아 캠피스의 The Imitation of Christ (그리스도를 본받아) 입니다.
거기서도 다른 사람들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
가장 완전한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To
think of oneself as nothing, and always to think well and highly of others is
the best and most perfect wisdom.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좋고 높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완전한 지혜입니다.
이 세상이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은, 오히려 단절, 고립, 무기력, 냉소 등입니다.
극단적 개인주의의 어두운 면들이 존재합니다. 관계를 잃어버리고 공동체를 잃어버리고, 그래서 삶을 잃어버린 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보다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자들이 더욱 필요하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신앙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비우고 내려놓고, 겸손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품고,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지라도,
그러한 현상에 유혹되거나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확실히 붙잡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비울 때에, 우리는 서로와 연결이 됩니다.
진정한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예수님의 생명이 풍성하게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비울 때에, 다른 말로,
진정한 solidarity즉 연대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 관계, 선교에 이것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삶을 이미 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분파가 많은 교회도 없었을 것인데 그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19-20)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 자신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에, 그는 각양 다른 사람들을 품고 관계를 맺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가는 쿠바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쿠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열린 마음으로, 즉 비워진 마음으로 추구할 때에, 진정한 solidarity 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문화,
나의 작은 경험으로, 나의 적은 돈으로, 강압하고 조정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진정한 관계가 형성이 되고,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이 되고, 그곳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고 상호가 상생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막바지에 서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내려 놓으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 주어졌음을 다시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비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비우고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자유라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비우고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당신의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소외되고 고립되고 상처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을 품고, 인도해 나가는 작은 예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