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성경: 시편 8편
설교: 초라하게 느껴질 때
오늘의 시편은 참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1)
그리고 이렇게 끝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이렇게 아름다운 시편을 쓴 것을 보며 혹시 다윗이 이 시편을 썼을 때,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랜드캐년 앞에 있었을까 아니면 록키산 앞에 있었을까 아니면 에베레스트 산을 바라보며 이 시편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아닐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 시편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답고 광대한 세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대학부를 맡아 일할 때에, 저는 매년 그들을 알곤킨 공원에 Interior 속으로 카누 트립을 했습니다. 많을 때는 30명도 넘게 갔습니다. 한 카누에 두명씩 타니 15개 이상의 카누가 줄을 서서 갔습니다. 한번은 밤에 하이킹을 나갔습니다. 도시에서는 모르지만 이 자연 깊숙한 곳에 가면 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와 숲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바로 앞에 걸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로 서로 점검을 하며 한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숲이 사라지고 밤하늘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이 바로 눈앞에 열리고 쏟아지는 수백만개의 별이 우리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요. 밝고 아름답고 광대합니다. 거기에 도착했을 때, 그때까지 떠들고 오던 사람들이 다 입을 다물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아주 깊은 어두움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의 삶이 어두웠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문제로 싸여 있었고, 주위에는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달려드는 적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시편 8편입니다. 이 시편의 전에 나오는 시편들을 보면 다윗의 어두움과 그의 문제들을 아주 잘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편에서 7편까지 읽어보면 그의 문제를 여러분들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시편 2: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편 3:1)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시편 4:2)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시편 5:9)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 6:2,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시편 7:1, 2)
다윗은 깊은 어두움 속에 있었고,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위험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의 원수들은 호시탐탐 다윗을 죽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삶이 너무 어두워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8편을 보면 제가 알곤킨 공원에서 경험한 것처럼, 다윗은 어두움 속에서 나와 열린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답고 광대한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시편을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1)
살다보면 우리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 많은 문제들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어둠 속으로 몰고갑니다. 그 어둠에 싸여 있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도 보이지 않고, 빛도 없고, 헤쳐나갈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이런 느낌,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Simon and Garfunkel의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그 당시의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젊은 사람들은 세상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마르틴 루터 킹의 죽음, 베트남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소망을 상실한 젊은이들에게 그 노래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When you're weary (지치고)
Feeling small (초라하게 느껴질 때)
When tears are in your eyes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때)
I will dry them all (내가 그것을 닦아주리라)
I'm on your side (나는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Oh, when times get rough (고난의 시간이 찾아올 때)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둘러봐도 친구를 찾아볼 수 없을 때)
Paul Simon은 이 노래를 어떻게 썼는가 하면 “Oh Mary, Don’t you weep” 이라는 복음성가를 계속해서 듣다가 영감을 받고 이 노래를 썼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곡이 유명해지고 나서 그 복음성가를 쓴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체크를 그 자리에서 써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이 노래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저 속에서부터 흘러 나왔다고 말합니다. 복음성가를 듣다가 쓴 노래라서 그런지 그 노래 속에 복음성가의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자신의 연약함, 허약함, 한계성 그리고 무기력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이 불편합니다. 자신감이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무너지지 않는 그런 강력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즘 영화들을 보면 이 수퍼 영웅에 관한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Marvel Series, Captain America, Iron Man, The Incredible Hulk, Thor
제가 어렸을 때는 이소령의 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이런 영화들이 인기였지요. 그 영화를 보고 나면 10명 20명이 덤벼도 다 이겨낼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기분이 좋은 것이지요. Feeling Powerful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무기력함을 느끼며 삽니다. Tremper Longman, 구약학 교수는 아브라함에 대해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Being human is not being safe, or comfortable.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 아니다.)
Being human is being uncertain, being on the way to an unknown place.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불확실하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많은 도전들을 직면해야 하고, 종종 우리에게는 그런 도전들을 이겨나갈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지혜도 부족하고 힘도 없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항상 도전에 대해 얼굴을 돌리며 살았기 때문에 막상 그런 도전이 우리에게 들이 닥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다윗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시편을 쓴 것입니다. 답답하니 시편을 쓴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자기의 하소연을 시로, 기도로 쓴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그는 하나님께 그의 얼굴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그의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그의 얼굴을 돌릴 때, 그는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였습니다. 마치 어두운 숲을 지나 열린 곳에 도착하여 자기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밤 하늘을 보게 된것처럼 수 많은 별들을 보며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것처럼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기와 같이 작고,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게 하나님은 신경을 쓰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께서 먼지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3, 4)
자기는 작았지만 땅과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천하 만물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잘 보이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를 중요시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으로 그에게 관을 씌워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5)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먼지와 같은 하잘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보석과 같은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초라하게 느꼈을 때, 그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신비입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느낄 때,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의 영광으로 옷입혀 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의식 속에 새롭게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치유를 받고 회복이 됩니다.
초라함을 느낄 때, 신앙은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도구가 됩니다. 그때까지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기력함을 느끼고, 깊은 절망이 찾아들 때에, 우리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우리를 어둠에서 끌어내어 줍니다. 그 신앙이 우리를 영화롭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