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성경: 고린도후서 8:7-15
설교: 삶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좋은 건강, 좋은 음식, 좋은 가족, 좋은 교회, 좋은 삶 -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삶은 선물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을 선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나가 보니 사람들이 있어서 자기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그들을 부릅니다. 또 정오에 나가 보니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자기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부릅니다. 한 시간 전에 또 나가보니 아직도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불러 자기 포도원에서 일하게 합니다.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나고 임금을 지불하는데 1시간 전에 온 사람부터 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에게 1 데나리온, 하루의 온전한 임금을 지불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나와 일한 사람에게도 하루의 삯인 1 데나리온을 지불합니다. 아침에 온 사람들은 자기의 페이를 받았지만 화가 났습니다.
왜 화가 났는지 이해는 갑니다. 저도 그런 상황에 있었으면 화가 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 시간 전에 온 사람들에게 1 데나리온은 삯이 아니라,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이 선물이라고 하는 귀한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선물이라고 보십니까?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귀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그렇게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풍성함은 다 선물입니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음 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8)
선물을 소유물로 바꾸지 마십시오. 선물과 소유물은 다른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선물이라면 여러분은 그것을 나누기를 즐겨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유물이라면, 그것이 아까워서 나누지를 못할 것입니다. 나누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에, 나눔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 다시 흘러 들어갑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갖고 사는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삶이 끝날 때, 그 생명도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우리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의 선물을 그저 감사하며 즐길 뿐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8)
우리에게 풍성함을 허락하신 것은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이 삶을 선물로 보기 시작 할 때, 그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삶이 됩니다. 여러분의 달란트를 나누고, 여러분의 물질을 나누고, 여러분의 시간을 나눕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오늘 본문의 첫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8:7)
고린도 교회는 재정적으로 탄탄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비해 경제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보다 관대하지는 못했습니다.
북쪽의 지역이 마게도냐이고 남쪽의 지역이 아가야 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에 속해 있었고, 고린도는 아가야에 속해 있었습니다. 아가야가 마게도냐 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있는 교회가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은 삶이 선물이라는 진리를 꼭 붙잡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 진리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에게 헌금하는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은사,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축복도 받았고, 믿음도 받았고, 많은 지식도 받았는데 아직, 나누는 삶을 알지 못했습니다.
7절을 보면 그런 바울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8: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하라는 말은 이 나누는 은혜에도 풍성하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영적인 은사에 대해서도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보내는 첫 서신에서 고린도 교회에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의 은사가 큰가 하는 것으로 서로 싸우지 말라고 그들에게 충고를 합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고린도전서 12:29, 30)
그들은 성령의 은사마저도 자기들의 소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서로 누가 더 큰 은사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
여러가지의 은사가 있지만 그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의 마지막에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전서 12:31)
그리고 13장에 가서 그 유명한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13장 전체를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사랑은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그것을 우리가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사랑은 나눌 때에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선물은 나눠야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을 때, 그것은 그저 소유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풍성함을 경험했습니다. 삶이 선물이라는 것을 강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것이 그들이 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44, 45)
그들은 나누었습니다. 삶이 선물이라는 것을 깊이 경험하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삶이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깨달으면서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합니다. 나누는 삶이 바로 풍성한 삶입니다. 나눌 때,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집니다.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숲 속이나 험한산 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내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3.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셨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예수님은 가장 멋있게 삶을 선물로 생각하며 사셨습니다.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을 그 분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9절을 보면 그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9)
그것이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