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
성경: 사도행전 4:32-35
설교: 족한 삶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오는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주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받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고 싶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주고, 우리의 달란트를 주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우리의 친절함을 줍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예수님이시고 그의 삶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주시는 삶이셨습니다. 주시는 것이 그의 삶의 기초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5:2)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임했고, 성령님은 그 믿는 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 같이 모였을 때,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주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32)
그들이 보여주었던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주는 힘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신 것처럼 그들도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크리스챤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주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를 그저 달달 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자기 자신을 보며 스스로 기분 좋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깨끗하고 정결하게 삶을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는 것이 바로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제일 먼저 우리 안에 생겨지는 것이 바로 주고자 하는 갈망이 생깁니다. 새로운 갈망이 내 속에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주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갈망이 생긴 것입니다. 주는 것이 기뻐집니다. 꼭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그런 의무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주는 것 자체가 기뻐서 주게 됩니다. 새로운 lifestyle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상한 변화이지만 성령을 받을 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삶을 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늘 부족하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More than enough라기 보다는 Less than enough 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늘 불안한 것입니다. 더 가지려고 합니다. 이기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될 것이고 결국, 인생에서 패배자가 되고 말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남에게 주면 나의 것을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움켜잡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입니다. 꼭 움켜 잡아야만 살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은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두려움, 그런 생각을 몰아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우리는 More than enough, 족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움켜잡으려고 하는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우리는 내려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기쁜 삶, 풍성한 삶은 물을 저장해 놓는 물탱크와 같지 않습니다. 풍성한 삶은 마치 Channel, 수로와 같습니다. 늘 물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나가는 수로 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 혹은 디베랴 바다라고 하지요. 또 하나는 사해 입니다. 실상, 갈릴리 바다는 민물입니다. 그러나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다라고 불렀지요. 둘은 아주 다릅니다. 갈릴리 바다는 늘 요단강으로부터 물을 받아 다시 요단강으로 내 보냅니다. 늘 신선한 물이 있고, 거기에는 물고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해는 물을 받기만 했지 내 보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물이 아주 짜고 생명이 거기서 살지를 못합니다. 저도 사해에 몸을 담궈본 적이 있지만 몸이 저절로 뜹니다. 물이 아주 짭니다.
주는 삶을 살아갈 때, 여러분의 삶은 신선해 집니다. 주는 만큼 들어오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8)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실 것이고, 이제 여러분은 그 축복을 흘러 내려 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또 더 큰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허락해 주시는데, 그것으로 족합니다. 언제든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어떤 환경에서도 여러분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주시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덜 주시면 그래도 족합니다 라고 생각하며 사십시오. 왜냐하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의 태도 아니었습니까?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
우리는 늘 우리 자신에게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족하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더 갖기 위해 구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억지로 만들어 더 가지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로 살아갈 때, 주는 삶을 살기가 더 쉬워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좀 더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줄 것이다. 그런데 주는 삶을 사는 것은 그렇게 work 하지 않습니다. 적게 가지고 있을 때, 주지 못하면, 많이 가지고 있을 때도, 주지 못합니다. 준다고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1-4)
준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이 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이 족하다고 여러분에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 있을 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는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인용하면서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
행복은 받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는데서 옵니다. 줄 수 있는 입장에 여러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풍성함은 여러분이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풍성함은 여러분이 얼마나 나눠주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풍성한 삶을 살았고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의 정의입니다. Be blessed to bless.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마음 껏 복을 나눠주십시오. 그것이 신앙의 시작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의 원리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복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