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1일
성경: 마태복음 9:9-13, 18-26
설교: 나를 도와주소서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변화의 시작입니다. 치유의 시작입니다. 의로움의 길로
가는 시작입니다.
아주 간단한 내용이지만
또한 아주 simple 한
태도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powerful 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2년동안
혈루병으로 고생을 하던
여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뭐 내놓라고 할
것도 없었고, 그
치유를 받을 자격이나
큰 일을 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그 마음만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육체적으로만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병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여인들이
겪었던 월경을 더럽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한 달에 한번씩
여인들은 자기가 더럽다고
느끼는 수치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참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한 인간에게
이런 느낌을 갖게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한달에 한번씩
그 수치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병 때문에 늘, 그
수치를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문화가
잔인하고 억압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문화는 과감하게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제 사회적인 어떤
스티그마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자기
자신을 더럽다고 여길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삶이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그 간단한
태도가 그에게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회당장의 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를 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어떤
태도로 찾아 왔습니까?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는 태도로
찾아 왔습니다. 그의 단순한
이 태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 태도가
바로 그의 딸을
살렸습니다. 죽은
딸이 살아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된 것입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나
회당장이나 그들이 특별히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단순한 이
마음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여러분들의
기도가 단순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긴 기도
할 필요 없습니다. 아름다운 말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한 마디, 나를 도와주소서, 그것 하나면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단순한
태도로 삶을 산다면,
여러분의 삶은 매우
simple 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감탄시킬
필요도 없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증명할 필요도
없고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하나님께 나와
주님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한마디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와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 한마디면
됩니다.
유럽의 교회가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아십니까? 아주
간단하게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원래
계획은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밤에
그가 비젼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
비젼이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사도행전 16:9)
와서 도우라. 이 간단한
요청으로 말미암아 전
유럽이 크리스챤 국가가
되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나는
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칠
재물도 없습니다. 그저 주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태도를 좋아하십니다. 마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마태복음 9:13)
그것이 바로 마태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세리를
미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등쳐 먹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도둑과도 같은
존재,
매국노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그들은
자기의 위엄도 버리고
개인적인 도덕도 헌신짝처럼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늘 나는
더러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살았습니다.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 여인은
잘못된 사회적인 이유로
그렇게 살았지만 세리들은
이해할만한 이유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셨을
때,
그는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부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은
마태에게는 온전한 영광의
초대일 뿐이었습니다. 마태는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나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생이 자기를
따르라고 그를 부른
것입니다. 그는
그 부름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때
하셨던 말씀이 아주
강하게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13)
마태는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마태는 영원히
변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등쳐
먹던 세리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는 성경의
한부분이 되는 Master piece인
마태복음을 쓰게 된
것입니다. 자비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자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마태복음 9:13)
실상,
이 말은 그들의
선지자인 호세아 선지자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도와주소서” 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의롭다”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것은 우리가 깨끗하고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는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는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의로움에서
놀랍고 능력 있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두가지의 다른
의가 있습니다. 내가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의,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의,
이 두가지의 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그
차이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9-14)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의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면서 진정한
의를 찾게 됩니다. 거기서 바로
빚진 자의 마음이
시작되게 됩니다. 삶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빚진 자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된 의는
이런 마음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진정한
의 속에는 진정한
사랑,
아파하는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사랑 속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 지난 목요일:
Forum
두 여인의 이야기. Robi Damelin and Laila AlShekh. 라일라 - 팔레스타인 여인, 로비 - 이스라엘 여인
이스라엘 군인이 라일라가
살고 있는 마을에
최류탄을 뿌려서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아들의 폐가 상하게
되었습니다. 20분
밖에 되지 않는
병원에 가려고 하였는데,
check point에 걸려 가지
못하고 겨우 돌아
돌아 병원에 갔지만
너무 늦어서 그
아이는 죽고 맙니다. 또한 로비의
아들은 이스라엘 군인이었는데
좋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둘 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놓고 아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복수의 길을 선택하기
보다 긍휼과 용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입니다. 그런
의에서 진정한 치유가
나옵니다.
지금 그들은 그
둘 사이의 분쟁으로
말미암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600 가족이
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화해와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의는 분열을 가져오고
폭력을 가져오지만 올바른
의는 치유와 화해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긍휼을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