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4일
성경:
마태복음 28:16-20
설교:
위대한 사명
지난
주에 제가 성경 번역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마다가스카의 4 부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여 왔습니다. 한 부족 언어로 번역을 하는데
미불 10만불이 듭니다. 한 사람이 10만불을 기증해서 한 언어로 번역하고 프린트하는 것은 끝나서 작년에 그 성경으로 예배를 드렸고 올해 7월에
두번째 번역이 끝나 또 두번째 부족 언어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부족 언어로 번역을 시작합니다. 미불 30만불을 모금하는데 처음에
기부를 한 그 사람이 다시 십만불을 기증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이기적인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펴보면 선한 일을 위해, 자기의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일은 마다가스카 사람들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앞으로 선교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artnership 입니다. 그저 서구의 나라들이 개발 도상 국가에 있는 나라들을 돕는 그런 전 근대적이고 식민지적 사고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파트너라는 개념을 갖고 선교에 임해야 합니다. 서로의 약한 점을 보완하고 강한 점을 사용하여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마다가스카에 있는 사람들이 북미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정이 있고, 선교를 또한 잘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도움을 주어 그들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Enable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Enabler 이지요. 물론, 그동안 선교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의
위대한 사명, The Great Commissiion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마태복음 28:19)
마태복음
28:18-20은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중국의 선교를 했던 위대한
선교사, Hudson Taylor가 처음 사용했던 단어였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Great Commission is not an option to be considered; it is a command to be
obeyed.”
예수님의
위대한 사명은 고려해야 하는 어떤 Option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명령이다.
태양이
그 마을이 작다고 그 마을을 잊어버리지 않듯이 그 부족이 아무리 작은 부족이라도 복음을 듣지 못한 그 부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에서 이 번역
운동을 한 것입니다. 제가 낙스의 아카 센타에 있을 때에도 타이완의 학카 부족의 언어로 번역을 책임 맡았던 사람이 저와 같이 일했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성경책은 Africa Study Bible이라고 아프리카의 실정을 감안해서 주석과 이야기를
담은 성경책입니다. 엄선교사님의 이름이 제일 첫 페이지에 나옵니다. Leadership
International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이 성경을 출간했는데 엄목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Leadership
International의
리더가 작년에 마다가스카에 방문했는데, 심장마비가 와서 거의 죽을 뻔 했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무사하게
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Great Commission은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Great Commission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된 것입니다. 이 Commission을 아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기의 삶을 바쳐 이 Commission을 완성시키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영생의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바울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로마서 1:14)
물론,
바울이 그들에게 돈을 꾸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에 빚진 자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이고 그가 그 빚을 갚는 길은 바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이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건강, 좋은 삶의 환경, 안전…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안. 매일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랑. 나를 살려주는 용서와 자비. 영생에 대한 소망,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선물, 값을 치루지 않은 선물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꼭 갚아야 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깊숙히 우리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그것이 빚진 자의 마음이 됩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빚진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하여 자기는 빚진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그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갚아야 하기 때문에 갚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감사 때문에 갚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삶에서 불의를 당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파괴된 자연환경. 그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마다가스카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자기들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도와주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하면 그들은 도리어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늘 빚진 자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Commission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통역하는 사람은 그 학생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보고 나에게 와서 너무 기뻐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학생들이 해주었던 얘기를
해줍니다.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크리스챤의 태도가 아닙니다. (Entitlement) 가져야 할 것을 당연하게 가지고 누려야
할 것을 당연하게 누리며 산다고 하는 생각은 크리스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아닙니다. 빚진 자의 태도가 바로 크리스챤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이 위대한 사명을 바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이루어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런 찬양을 합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우리에게
만 입이 있어도 하나님을 충분히 찬양하기에 부족합니다. 그것이 바로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이 위대한 사명은 우리가 지켜야 할 영광스러운 것이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의료 선교를 하였던 David Livingstone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의 왕이 나에게 내린 사명이 영광스러운 것이라면 어떻게 하늘의 왕이
주신 이 사명을 희생으로 보겠는가?”
우리가
선교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우리의 특권입니다.
선교적인
삶이 늘 쉽지는 않겠지요. 때로는 어려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희생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 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선교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이고,
내 속에 내재하는 주님이 나에게 힘과 에너지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선교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제일 잘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그 길입니다. 선교를 할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챤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과 관계를 가지십시오. 그분과 매일 동행하고 함께 걸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Cote d’Ivoire의 격언이 있습니다.
“No
tree produces fruit without first producing flowers.”
예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이루어져서 꽃을 피우게 되면 거기서 열매가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식을 따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분을 따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따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본능을 따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그의 말씀을 깨달아 아십시오.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형성하고 만들어 가게 하십시오.
이번에
수 벨리에 22명이 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 14명이 등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학생은 제 선교 리포트에서 증인이 되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결정했다고 말합니다. 그곳에 갈 때, 빚진 자의 마음으로 가십시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십시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들으십시오.
그들이 경험했던 불의를 들으십시오. 그들과 함께 하십시오. 그들이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누군가 care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십시오. 매일 주님과 함께 걸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shape
하여주실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실 것입니다.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허무한 꿈, 아무 쓸데없는 꿈을 따르며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눈을 그리스도에게
두십시오. 삶의 충만함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그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을 주는데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신비를 경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늘 받게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인 삶의 비밀을 깨달으십시오. 선교는 바로 이 영적인 깨달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선교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