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성경: 창세기 12:1-4
설교: 정착과 여정
삶은 정착과 여정, 이 둘의
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어 표현에
living out of a suitcase 라고 하는
표현이 있지요. 늘 짐가방을
싸놓고 떠날 준비를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뭔가 정착했다
하는 느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Feeling settled!
그래서 이민 생활이 참 힘든
것입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바뀌어
낯선 땅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이민
생활이었습니다. 뿌리가 뽑힌 기분이죠. 정착할 여유도
없이 아주 생소한 삶에
적응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왔기 때문에 정착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민자였습니다. 그는 두번이나
이민을 했습니다. 그의 원래
고향은 우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 하란으로 갔지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떠나야만 했습니다. 정착해서 잘 살던
곳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그저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성경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잘 보여주듯이 인생은
정착과 여정이 조화를 이루며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삶을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이 정착과
여정의 dynamics를 잘 알고, 언제
정착하고 언제 여정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정착이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내려진 상태를 말합니다. 안정이 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정착이
잘 되어 있을 때에 아주
편안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관계가
잘 정착되어 있을 때, 만족스럽고 편안합니다. 직장이
잘 정착되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여러분
자신과의 관계가 잘 정착되어
있을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본인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정착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
속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에 편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이상 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전에 만족했던
것들이 더이상 우리를 만족케 하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잘 정착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삶이 정착이라기
보다는 고착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Feeling stuck 뭔가에 묶여
있는 기분이지요. 삶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그저 의미 없이
맴도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가고
싶지만 가지를 못합니다. 가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를 못합니다.
고착된 기분과 정착된 기분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고착된 기분은
마치 차가 도랑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있기를 원치 않지만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인생이 고착이 됩니까?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 내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사라져버렸을 때, 우리의 삶은
고착됩니다. 더이상 그 인생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힘을
줄 수 없습니다.
꼭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가 사라져 버렸을 뿐이지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우리가 여정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착된 자기 자신을 보며
그게 싫어서, 변화를 막 만들어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깊은 생각이
없이,
다급하게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변화를
만든다는 그 자체가 여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변화를
만든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다시
stuck 되게 됩니다.
여정을 한다는 것이 꼭 큰
변화를 만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직장을 관둔다던가, 관계를 떠난다던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을 뜻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정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알고,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나의 갈망, 나의
인생의 골을 잘 아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나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내적인
여정이지 겉에 보이는 여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여정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변화가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맴도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축복된 삶이
아닙니다.
어떤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바드 대학에서 강사로
가르쳤었습니다. 그런데 정교수직을 받지 못하고 시골에 있는 어떤
작은 대학에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늘 두개의 점수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그 학교에서 받은 점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하바드에 있었다면
받았을 점수였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하바드에 그의 마음이
stuck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묶여 있는 삶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인생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큰 인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축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 고착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던 원치 않던
변화는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필요한 것, 다 변합니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여러분은 있는 그곳에 묶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갈 때, 여러분은
행복하지 못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기분만 나빠질 뿐입니다.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새로운
열정,
새로운 흥분, 새로운 소망과
에너지를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를 조금만 바꿔도
우리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묶여있는데서 풀려나면 차가
수렁에서 나와 달리는 것처럼
다시 full speed로 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데 나이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 75살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75세까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마 별볼일 없었기 때문에
성경은 아예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마치
75세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의 삶은 80세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늙어서, 너무 나이가
많아서,
너무 늦어서,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여정을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여정은 바로
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의 여정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랬지 그곳이 어디라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정확히 우리의 종착지가 어딘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는 그저 믿음으로 그 발걸음을
내 디딛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바로 inner voice를 듣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소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소음을 뚫고 나와
우리에게 들립니다.
믿음의 여정을 할 때, 변화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착된
느낌을 갖게 됩니다.중요한 변화를 만들어가지만 그것을
허둥지둥 막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저 묶여 있는데서 뛰쳐
나오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만들기
때문에 마음이 편합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감정적으로 만드는 결정이
아닙니다. 생각 없이 만드는 변화가
아닙니다. 음성을 듣고, 정확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며, 자신감을
갖고 만드는 변화이기 때문에
그 변화 속에서 정착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착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나무를 보면 그것은 그 자리에
그저 있습니다.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잘 정착이
되고 뿌리 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면 말할 수 없는
움직임이 그곳에 있습니다. 물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착된 것입니다. 그것은 묶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를 보십시오. 건강한 나무와
같이 그곳에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여정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묶여있는 것입니다. 고착된 것입니다.
좋은 삶은 늘 여정을
합니다.
변화의 여정을 합니다. 항상 삶의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무엇이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늘 찾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듣습니다. 삶의 부름을 듣고 하나님의
부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저
막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심으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특히
여러분 자신을 위해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것을 하려고 하는 그 갈망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시고 여러분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여정을 시작하실 때에, 여러분은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 모습,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여정의 골입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그의 여정을 통하여
진정한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삶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뚫고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 자신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반드시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