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성경: 마태복음 17:1-13
설교: 영광스러운 시간
마태는 오늘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엿새
후에”
엿새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16:21)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히 변하셨습니다. m상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황홀한 광경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저 세상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그의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을
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 순간이
너무 황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생들을 데리고 알곤킨
공원에 카누 트립을 갔을
때 그랬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하이킹을 했습니다. 너무
캄캄해서 앞에 걸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을
한참 걸어가다가 한 지점에
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열리고 하늘에는 별들로 가득
찼었습니다. 마치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고요한
가운데 모두 그 광경에
입을 다물고 그 순간을
몸에 끌어 안고 한 오랜
시간을 그저 바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들
입을 다물고 그 순간을
느끼고 있는데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기
너무 좋습니다.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해,
또 하나는 모세를 위해,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습니다.
하나님도 더이상 베드로에게는 인내심을
잃으셨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말하고 있었는데 베드로의 말을
가로막으셨습니다 마태는 아주 점잖게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말할 때에
(While he was still speaking…)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마태복음
17:5)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태복음
17:5)
두가지 중요한 것: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그를 기뻐한다.
이제는 모두 다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도 말입니다. 누가는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9:36)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늘 그들은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였습니다. 이 경험은
더이상 그들에게 과거의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늘 현재의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경험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이렇게 변하게 하셨고 제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경험하게 하셨는가?
저는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 이 경험이
필요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경험해야 했던 일들이
쉬운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당할
고난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그들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만져주심이었습니다. 그들이 홀로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확인하신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고통은 은혜라고 하는 그 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 영광스러운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고통이 그렇게
힘듭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고통은 힘듭니다. 여러분이
성인이던 죄인이던, 고통은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던, 아니면
그저 평범한 우리들이던, 고통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터어키와 시리아를
위해 두주에 걸쳐 특별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
것인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4만명이
죽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슬픈 이야기들이 거기에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주
작은 정성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누군가 care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n벌써 저희
교단에서는 담요와 필수 품목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예수님에게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에서
그는 그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유혹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이 놀랍고
황홀한 경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통은 반드시 은혜의 품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을 은혜
없이 경험할 때, 우리는 망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든 견뎌는 내겠지요. 그러나
망가져서 나올 것입니다. 마음이 강퍅해지고, 쉽게
화를 내고,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고 나온 사람들을
보면,
더 강한 모습으로 나온 사람들을
보면 저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없이, 그들은 망가졌을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피할 수 없는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 고통을 당합니다. 질병의 고통, 잃은
것에 대한 고통, 깨진 관계의
고통,
죄책감의 고통,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나오는 고통, 불의의 고통, 가난의
고통,
거절 받음의 고통, 외로움의 고통, 죽음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고통, 등, 늘 수 많은
고통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끝이 없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 모두에게 바로 이 영광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이 고통들이
우리를 삼켜먹을 것입니다.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그의
고통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경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모두
이 영광스러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광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이 꼭 영광을 받는
시간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은 두가지 중요한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귀한 딸이요 아들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주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당신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싫어하셔서가 아니고, 여러분들을 처벌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스러운 시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바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매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여정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기도와 묵상 시간에 이것을
매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을 때, 나 자신이
자꾸 초라해지고, 작아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작은
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작은
친절을 받았을 때, 위로의 말, 긍정적인
눈빛,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여주시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작은 선물들입니다. 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너는
쓸데 없는 존재다, 가치 없는
존재다 라고 느끼게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것을
매일 경험하며 살 때에, 이제
여러분은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17:12)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이제
고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고통을 피해 도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
가운데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고통은 여러분을 외롭게 합니다. 그것이 고통이
하는 것입니다. 외로움, 나 홀로
밖에 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버림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침묵까지
경험하셨습니다. 그것이 고통이 우리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절대로 홀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시간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독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로 거기에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슬픔
가운데 위로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분노와 짜증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할 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경험할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 작은 한가닥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홀로 고통을
당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고통은 은혜속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