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9일
성경:
고린도전서 1:18-31
설교:
구원을 가져오는 지혜
진정한
지혜는 머리로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옵니다. 진정한 지혜는 무엇을 해야할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의 삶에 비하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도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개발과 발전으로 인하여 이전에는 힘들게 얻을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손가락 몇번만 움직이면 다 나옵니다.
지난
주에 제가 하나님은 구글 서치를 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구글에다 God이라고 쓰고 서치를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에 관한 글이 끝이 없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일 처음 나오는 질문이
“누가 하나님을
창조하였느냐”라고 뜨더군요. 아마 사람들에게 그것이 가장 관심 있는 질문인가 봅니다.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데 그 지식의 대부분은 정보, 데이타, 그저 사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Factual Knowledge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혜를 주지 못합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정보, 데이타, 그저 Fact에 관한 내용, 이런 것들을 원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을 사용하여, 나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또한 남을 주장하고, 지배하고, 남보다 위에 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그런 종류의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 수 많은 지식, 이전에 갖지 못했던 그런 지식들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는 커녕 더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본다고
생각하지만 보지 못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무엇인지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쳐 주시고,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진정으로 고쳤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론은 단순했습니다.
안식일을 범한 사람이 어떻게 치유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부모까지 데려와서 인터뷰를 하고 어떤 이유로든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한복음 9:40, 41)
바리새인들,
권세를 갖고 있었던 자들, 교육을 많이 받은 자들은 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눈이 멀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보지 못하고 아직 죄의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우리가 지혜롭다고 말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해줍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생의 더 큰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늘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과 자기 자신의 실패에 대해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끌어안고 살 수 있습니다. 감추며 아닌 척하며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지 못한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진정한
힘은 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때로, 진정한 힘은 부드러움, 심지어 연약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힘도 마찬가지 입니다. 늘 자기보다 더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지혜롭고 강한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압니다. 그들은 그들의 한계를 압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지혜나 힘에 대해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 바울 사도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십자가에서 그것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십자가는 연약함을 상징하고, 패배, 온전한 실패를 상징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은 승리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악은 승리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불의는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연약함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어리석음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가장
큰 권세를 갖고 계신 분이 그 힘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음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왜?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바울은 이해하였고,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29)
예수님과
바울 사도는 진정으로 지혜와 힘이 무엇인지 아셨던 분들이셨습니다. 그들의 지혜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는 지혜였습니다.
그들의 힘은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힘은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그런 지혜와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지혜와 힘을 자기 자신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을 어둠에서 구원하는데 지혜와 힘을 사용하셨습니다.
왜
의로운 사람이 죄인으로써 죽습니까? 왜 힘 있는 자가 마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처럼 죽습니까? 왜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죽습니까?
그에게
우리 모두를 깊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고 죽는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길을 택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이 의로왔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예수님에게 모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30, 31)
지혜가
진정한 지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될 때입니다. 강함이 진정한 강함이 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주장하고, 정복하고, 왕노릇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신 것은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서 지혜와 힘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입니다.
지혜와
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들입니다. 다 그것을 갖기 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 아름다운 것이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 지혜와 힘을 사용하여 그의 일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연약하고, 보잘 것
없고, 천하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여 그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우리의 마음을 선택하셨습니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어리석어질 수도 있고, 연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지혜와 진정한 힘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