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4일
성경: 이사야 11:1-10
설교: 사랑은 적대심을 녹인다
우리는 지난 주 이사야의 아름다운 꿈을 묵상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아주 아름다운 꿈이었습니다. 선지자가 선지자 인것은 그들이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강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선지자가 선지자 인것은 아무도 감히 꿈을 꾸지 못할 때, 그들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비젼을 그들은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적인 꿈과 선지자적인 비젼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꿈을 듣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사야 11:6-8)
평화에 관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꿈과 비젼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가 살던 세상은 적대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에서도 평화의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보았습니다. 이런 세상이 바로 어떤 알지 못하는 신비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정확하게 그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이사야 11:1-3)
이 사람이 바로 평화의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얼마나 귀한 메시지입니까? 3,000년이 지났는데도 얼마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입니까?
한마디로 말해,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기쁘게 살아가는 꿈입니다.
이리가 양을 해치지 않습니다. 표범이 어린 양을 해치지 않습니다. 사자가 송아지를 해치지 않습니다. 곰이 암소를 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 같이 잘 어울려 살아갑니다. 서로를 Enjoy 하며 살아갑니다.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집어 넣어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안전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진정한 삶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드뭅니다.
너무나 많은 상처가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을 봅니다.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꼭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실수로, 무관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상처를 줍니다.
서로 어울려 잘 사는 것보다는 갈라진 모습을 저는 봅니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지고, 가족이 갈라지고, 친구가 갈라지고, 나라가 갈라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바로 이 적대심이라고 하는 것이 깔려 있다는 것을 봅니다.
Hostility. 우리 속에도 이 적대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적대심을 갖고 있는 한 평화는 가능치 않습니다. 이 적대심을 갖고 살 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를 갈라 놓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적대심을 뽑아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적대심은 너무나 많은 아픔을 이 세상에 가져왔습니다. 자기 자신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서로 서로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막힌 담을 허물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14)
이 막힌 담이 바로 원수 된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Hostility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적대심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담을 쌓고, 또한 하나님에게 담을 쌓아놓고 살아갑니다. 서로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언제든지 방어 태세를 취하며 마치 원수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분이 많은가? 왜 그렇게 미워하는가? 왜 그렇게 서로 싸우는가? 왜 원수처럼 살아가는가?
바울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10)
우리 인간의 적대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저 희생자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우리의 적대심이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우리의 적대심을 무너뜨리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적대심을 품으셨습니다. 우리의 적대심의 희생자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적대심을 내 뱉으시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남의 적대심을 호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은 그의 사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그리고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3, 44)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6, 47)
예수님은 사랑을 다시 정의 하였습니다. 사랑은 그저 기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바로 적대심을 녹였습니다. 사랑의 힘이 적대심의 힘보다 더 강합니다.
Jimi Hendrix라고 기타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When the power of love overcomes the love of power the world will know peace.
사랑하는 힘이 힘을 사랑하는 것을 이길 때 세상은 평화를 알게될 것이다.
잘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의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힘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적대심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 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적대심을 마음에 품고 살지 마십시오. 서로 서로 앙심을 품고 살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갉아먹고 아프게 할 것입니다.
적대심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하나의 보호 장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적대심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를 보호하기 보다는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고 말 것입니다. 모든 환경을 분노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속에서도 평화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관계에서도 평화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늘 혼자서 여러분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언 10:12)
적대심이 여러분의 영혼을 파괴시키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 적대심은 여러분 속에 분노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사는 것은 참 피곤한 인생입니다. 적대심이 여러분을 주장하게 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피가 적대심으로 물들어버린 여러분의 영혼을 깨끗게 하여줄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 여러분의 적대심은 녹아내릴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적대심을 녹일 수 있는 오직 한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