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2년 11월 13일)
이사야 65장 17-25절
“새롭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보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오해할 때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의 우리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첫인상에 대해서 꽤나 큰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이 좋은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계속 끌려서, 관계도
좋게 이어나가게 됩니다. 반면에, 첫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괜히 야박해져서,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기루라는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공기의
온도 차이로 인하여 빛이 굴절이 되어서 실제와 달리 물체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인데요, 이것도
당장 보고 느끼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닌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이 있는데, 우리의
삶에 영향를 주고 받는 것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보고 당장
느끼고 하는 것은, 밖에서 우리 안으로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세계, 감정의 세계가 우리의 존재와 삶에 영향을 주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보는 것이 전부인가 그리고 환경이 전부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또 다른 방향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향입니다. 우리의
존재에서, 우리의 인격에서, 우리의 신앙에서 밖으로 흘러 나가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향성과 영향력은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것에 중요성을 두고 사는 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장에
보는대로 그리고 느끼는대로 사는 삶과, 그런 것 너머로 볼 수 있고 또는 꿰뚤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는 삶은 많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매우 아름다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7절)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겠다는 아름다운 비젼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하셨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였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질문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배경을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요, 바벨론
포로된 자들이 억압에서 풀려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그들이 새로 지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보니, 지난날 화려했던 성전과 성의 모습과는 비교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초라하고, 남루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했을 때에, 주변의
난잡한 자들이 놀려 댔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 4:3)
돌아온 자들의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환향으로 인해 부풀었던 마음이 무너지고,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그리고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19절)
이들은 과거 포로 생활 중에 고향땅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시편 137편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시 137:1-3)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돌아온 백성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포하신 이런 비전의 말씀이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을까요? 그들의
좌절되고 실망한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러니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안에서 밖으로 흘러 넘치는 생명력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서, 그들을
새롭게 하셨을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묵상할 때에, 저는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4절)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들어 주셨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억을 떠올리며 제대로 된 찬양과 세련된 기도문이 아니었을 지라도, 최선을
다해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복음 성가 중에 “다 표현
못해도” 라고 시작하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그 찬양의
제목은 “그 사랑 얼마나” 인데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가리라
이러한 태도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산 제사로 드리지 않았을까요? 비록 현실이,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promising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새로운 존재들로 거듭나게 하셨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을 볼 수 없는,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목격하였을 줄로 믿습니다.
어제 구역장 훈련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도, 예배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를 갈망하는 교우들, 그리고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줌이나 유튜브로 예배드리고자 하는 교우들의 갈망을 듣게 됩니다. 예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를 새삼 알게 됩니다. St. Michael’s
에서 퇴원하셔서 Providence 리햅에 계시는 전국섭 장로님은, 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예배 중 “생명 주께 있네” 라는 찬양에
박자를 맞추어서, 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찬양하셨다고 듣게 됩니다. 비록 입에서
나오는 찬양과 손을 치는 박자가 맞지 않아도 말입니다.
또 어떤 교우들은 우버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화요성경공부에는 TTC 버스를
타고 오는 교우들도 몇 분 있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물질의 세계와 감정의 세계를 지배하고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들이 더 건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포하신 것처럼 100세를 넘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캐슬뷰에
계시는 임옥순 권사님은 1919년 11월 16일 생이시니 곧 103세가 되시네요. 지난 번에
김목사님과 찾아뵈었을 때에도 강건하셨는데, 어제 권사님 따님에게 물어보니 여전히 건강하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일제 시대와 육이오 등을 경험하셨고, 최근에는
전대미문의 코빗이라는 역병을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상황과 현실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회복되어지고, 강건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럴 때에 우리는 25절 말씀처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서로를 품으며,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비전이 현실이 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25절)
하나님의 성산이라는 거룩한 예배의 장소로 인하여, 더 이상
배척과 갈등이 존재하지 못하고 하나된 공동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곳은 더 이상 세상의 원칙이나 힘이 작동하는 곳이 아니니,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나는 곳이 아닙니까?
지난 화요일 화요성경공부를 마치고 한인여성회에서 오셔서 시니어들을 위하여 경제적 권리 침해 방지를
위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32명의 교우들이 참석하였는데요, 끝나고
세미나를 주관한 강사가 그러십니다. 디모데 교회 교우들이 세미나 참여하는 모습이 진지하고 너무나 잘 집중해 주셔서 감사했다고요. 한 번이
아니라 이메일로도 또 그렇게 얘기해 주셨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차이를 모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밖에서 온 사람은 다른 교회나 단체들을 경험하면서 그 차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우리 자신을
드리는 예배로 인한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의
보고 느끼는 현실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나이, 육체적인
상황, 처해진 환경이 다가 아닙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고, 영적인 축복이 있어서, 우리를 새롭게 하고 강건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망하는 자들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비젼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