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성경: 누가복음 16:19-31
설교: 왜 부자가 신앙을 갖기 어려운가?
왜 부자는 지옥에 갔고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갔는가? 부자는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갔는가? 그렇다면 부자는 지옥에 가고 가난한 자는 천국에 가는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궁극적인 운명이 이렇다 하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많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누가는 가난한 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들어 보십시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누가복음 1:53)
예수님의 취임 메시지도 그랬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누가복음 4:18)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아니라, 들판의 수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누가복음 6:20)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라고 했는데 누가복음 에서는 그저 “가난한 자” 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부자들에 대해서는 심한 말을 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누가복음 18:25)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예수님이 부자를 싫어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예수님은 부자를 가난한 자들보다 선호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요.
예수님께서 부자들에게 심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부자가 신앙을 갖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부와 참 신앙이 함께 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부와 종교는 쉽게 같이 갑니다. 그러나 부와 진정한 영성은 함께 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재물과 함께 너무나 많은 유혹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도 같은 경고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9)
부자들은 주로 자급자족 self-sufficient 할 수 있다는 생각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자기 스스로 충족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 self-sufficiency가 진정한 영성하고는 잘 맞지 않습니다.
영성의 밑바닥을 가만히 보면 이런 깨달음 속에서 시작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충분치 않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하고 또한 하나님이 꼭 필요하다. 나는 깨진 심령이고 연약한 존재다. 나는 나의 갈길을 모르니 나에게 갈길을 보여 달라는 그런 마음이 있다. 나는 두려우니 나를 도와주소서 라고 하는 간절한 외침이 있다. 내가 어둠 속에 있으니 나를 빛으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영성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이 우리의 신앙은 그저 종교적인 치장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이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벌써 그들은 그것을 배우지도 않고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깨진 심령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에게 이런 깨달음은 자동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 필요, 간절함,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신앙을 갖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다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부자라면 왜 그런 생각을 갖고 살겠습니까? 여러분의 환경이나, 여러분 자신에 대해, 또한 여러분의 능력에 대해 자신이 있지 않겠습니까? 삶의 어려움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 것들을 생각지도 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 영어예배의 멤버가 이런 이멜을 우리 목사들에게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 받는 Inner Voice가 나에게는 참 큰 힘이 됩니다. 매일 아침 그것을 읽고 그 기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 사람은 지금 당장 어려운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삶의 환경이 좋을 때,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기 자신 속에 빠져 너무 자기의 쾌락과 안전에 빠져 주위의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누군지에 대해서도 장님이 되어버리고 정말로 인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안전과 평안이라고 하는 bubble 속에 갇혀있게 됩니다.
얼마전에 아주 좋은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보시지 않은 분들은 보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멧돼지 사냥이라는 드라마 입니다. 4회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돈으로 말미암아 삶이 얼마나 엉키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엉켜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보면 부자는 자기의 쾌락에 너무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자기 즐기는 일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누가복음 16:19)
바로 그 다음 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누가복음 16:20, 21)
부자는 자기 즐기는 일에 도취되어 자기 문앞에 있는 거지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기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부자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가 지옥에 간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부가 그의 영혼을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또한 자기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그는 몰랐습니다. 결국, 지옥에 가서 그의 눈이 뜨였습니다. 그러니 봐야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지요. 그 Bubble이 터지고 그의 눈이 뜨여졌을 때, 그는 자기의 형제들이 보였고, 자기의 형제들도 자기와 같은 운명을 갖게될 것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지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 그의 형제들에게 경고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이런 진리를 말해줍니다. 만약 부가 그들의 눈을 장님으로 만들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면 아무것도 그들의 눈을 열어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묵상해 보십시다. 우리들은 그렇게 큰 부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부를 원합니다. 편하기를 원합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셔서 우리가 좋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경제적인 웰빙이 여러분의 우선권이 되었습니까? 그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지 물어 보십시오. 너무 나 자신의 편한 삶에 도취되어 내 주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지 한번 물어 보십시오. 아예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지 물어 보십시오.
그렇다면 돈이, 아니 부를 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돈이 여러분의 신앙을 앗아간 것입니다. 실제로 self-sufficient 하던 안하던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금송아지가 된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신앙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어느 것도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부가 여러분을 장님으로 만들게 하지 마십시오. 부가 여러분을 돕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만 부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풍성한 사람이 되십시오.
제가 지난 주에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창고에 쌓아놓고 자기 자신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자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너의 영혼을 요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21)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돌봐 주실 것입니다. 돈이 여러분의 종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주인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지 마십시오. 베푸는 삶, 돌보는 삶을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