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2년 7월 10일)
시편 25편 1-10절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소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망 안에는
힘이 있어서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게 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세상의 소망과는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그저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요행을
바라거나 허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상황이 잘 풀릴 것 같아서, 소망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소망입니다. 상황이, 또는 미래가
hopeful 하다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 저것
다 계산해 보고, 미래를 판단하고 예측하면서 희망적일 때에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상황이 좋아서도 아니고, 잘 풀릴
것 같아서 가지는 소망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경험과 판단을 뛰어넘은 영역에 관한 소망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소망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
결국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믿음으로
바라본 소망인 것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소망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믿음과 소망의 관계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롬 4:18)
영어로 보면 좀더 그 뜻이 명확해 집니다. “Hoping against hope, he believed”
이런 소망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에 뽑히기 전에 상원의원 후보자로 나설 때에, 연설했던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Hope in the face of difficulty. Hope in the face of uncertainty. The
audacity of hope.” 어려움 앞에서의
소망.
불확실성에 직면한 소망.
그리고 소망의 담대함. 그가 어필했던 부분은 그저 각 정당의 슬로건이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도록 소망의 담대함을 추구하자고 했었습니다.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에 대항했던 데스몬드 투투 주교도, 고통과
억압의 현실에 처한 남아공 원주민들을 향해서 설교나 강연을 할 때마다, 소망에 대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고 어둡다 라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가 소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Hope is being able to see that there is light
despite all of the darkness” 소망은
어둠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빛이 있음을 볼 수 있게 한다.
신앙의 사람들은, 이처럼 절망의 현실을 뛰어 너머, 소망을
바라보고 붙잡았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25편은 다윗의 시라고 제목이 달려 있는데, 이 또한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볼 때에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인지 원수들이 그를 둘러싸고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절)
또한, 다윗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7절)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기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믿음으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의 시편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1절)
나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 되시니,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봅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는 “소망”이라는
단어가 두 군데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옵니다. 3절에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그리고
5절에서 “주를 기다리나이다” 입니다. 여기서
“바라고” 와 “기다리다” 가 모두
동일한 단어입니다. 원어로 qavah
라고 하는데 hope 또는 wait 입니다.
우리가 보통 소망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도 보면, 소망이 있기에 참고 기다릴 수 있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관계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qavah 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더군다나, 원어인
qavah 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Making thread by twisting fibers together. 섬유를 꼬아서 실을 만든다 입니다.
새끼줄을 꼬듯이, 그런 일들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소극적이지
않고, 능동적이고 영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마치, 수술실에
들어간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또는 집을
구매하려고 오퍼를 넣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 시편에서 왜 그토록, 하나님께 자신을 가르쳐 달라고, 교훈하시라고, 또는 지도하시라고
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갈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함 받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구석 구석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 4절에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 5절에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 8절에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 9절에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절망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소망 안에서 기다릴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의 소망 안에 있을 때에, 우리의 존재가 강건해지고, 우리의
현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간절한 호소를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 주셨을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저 허송세월하면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나무 밑에 앉아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과 나무에
올라, 사과를 따 먹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는 죽을 때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도 아니요 소망의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순간까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은 오늘 이라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번에 유재신 목사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유재신 목사님은 전국섭 장로님의 아내되시는 유신자 권사님의 오라버니가 되십니다.
유재신 목사님은 김재준 목사님의 제자이었는데, 김재준
목사님이 신학교 졸업식에서 목회자가 될 사람들에게 해 주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여러분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책을 읽으십시오. 교역자가 가난해서 책 살 돈이 없으면 며칠 굶어서라도 그 돈으로 책을 사서 읽어야 합니다.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몸에 지니고 다니십시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이요, 겸손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늘 하나님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며, 그 가르침에 인생을 건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성경공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을 볼 때에,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나이와 상황에 영향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고 또 깨달으려고 참석한 자들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디모데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진하십시다.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