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021년 12월 5일)
빌립보서
1장 1-11절
어떤 누구도 자신의 삶에 열매를 맺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매 맺는다
라는 것은, 풍성함을 뜻하며, 아름다운 보상을 뜻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자신의 삶에 풍성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무슨 일을
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특히 인생을 바쁘게만 살다가, 이제는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시점에 있다면, 더더욱 그의 인생에 어떤 열매가 있는지 살피게 될 것입니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리도 달음박질 했는지 질문하면서, 그에 대한 열매는 무엇인지 살피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을 대해서도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이
잘 장성해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것이
부모에게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커리어 등을 생각하면서 열매 맺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 맺기
위해서는, 씨만 뿌린다고 열매가 자동으로 �셜耽� 되는 것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있는 분들은 열매 맺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잘 알 것입니다.
지난 초여름에 어떤 교우가 깻잎 모종을 주셔서, 뒷 뜰에
심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전 작업이 필요했고,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땅에 좋은 흙을 섞어서 갈아 엎었습니다. 그리고
모종을 옮겨 심고는, 간간히 물을 주었습니다. 줄기 밑에서 자라는 작은 잎들은 따주면서 몇 주를 보내니, 어느새
잎이 큰 깻잎들을 수확할 수가 있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땅은 정직하다 라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만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만큼, 땅은 반응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할 때에 반드시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따뜻한 마음을 금방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체에, “너희” 라는 호칭이
열한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굉장히 personal
하고,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8절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8절)
그리스도의 심장이라고 했는데, “심장”은 헬라어로
“splagchnon” 이라고 해서, 창자를 뜻합니다.
우리 말에, 애간장이 탄다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사랑이
있을 때에, 애간장이 타듯이,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함이, 애간장이
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 단어를 compassion 긍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간장이
녹는 사랑입니다.
빌립보는, 바울과 디모데와 실라가 2차 전도여행시에
전도하고 복음을 전한 곳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사랑으로 심었고, 사랑으로
돌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미 사랑의 열매들이 맺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5절과 7절에 나오고 있는 “참여함”이 그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5절, 7절)
이 참여함은 koinonia
라고 하는데, 주 안에서의
교제를 뜻하며, 복음을 위해서 삶을 나누는데 재정적인 면까지 함께 나누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물질까지 나누게 되는 참여는, 사랑이외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사랑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많은 경우에 일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control 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욕망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모한다고요.
사랑은 절대로 컨트롤 하지 않습니다. 내 욕망, 즉 그 뒤에 있는 두려움 때문에, 컨트롤
하려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기 사랑의 다른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정죄, 판단, 불신이 일어납니다. 또한, 실망도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내 뜻대로 하지 않는 상대방의 행위나 말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물은
있을 수 있지만 열매는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Love creates community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공동체를 만든다 라는 말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코이노니아 밑에 흐르는 영적인 원칙입니다.
사랑은 절대로 private
하지 않습니다.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역사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은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고자
하는 바울의 깊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1세와 2세가 공존하는
우리 교회처럼 말입니다.
Love creates community 이며, 사랑만이 역사하여 열매 맺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사랑은
그저 감정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애간장이 탄다고 했는데, 더 깊고, 더 큰
사랑을 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
오늘 본문 9절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아가페”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판단하거나 정죄해서 문을 닫아버리지 않습니다. 9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9절, 11절)
아가페의 사랑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지식과 총명이 있게 되어서, 결국에는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력이 있어서, 그 사랑을 경험한 모든 것들은 성장하고 꽃 피우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욕망도 아니요, 두려움도 아닌, 사랑으로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갔던 것이고, 심지어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세운 빌립보 교회는, 유럽 땅의
첫번째 교회였는데, 이로 인해서, 전 유럽으로 복음이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옥중에 있었지만, 사랑으로 계속해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씨 뿌렸으니
물주고 비료를 주고 했던 것입니다.
사진 한장 보시지요. 교회 주차장 입구에 심겨진 개나리 입니다. 노란색
꽃이 피었지요? 놀라운 사실은, 이 사진을 11월 20일에 찍었다
라는 것입니다. 15일 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남순자 권사님은 코빗 기간동안 즉 2년동안, 거의 매일
교회에 나오셔서 정원을 가꾸고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더욱 자신이 건강해 졌다고 하십니다. 빗물을
받아서 개나리 등 곳곳에 심긴 나무들과 화초에 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11월 20일 토요새벽
끝나고 지나가다 보니,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돌볼 때에,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남순자 권사님 뿐이겠습니까? 선교회장으로, 구역장으로, 권사회장으로, 당회원으로, 이 코빗
기간에 사랑을 섬기고 돌보는 모든 것들에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일 영어예배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올해 초여름부터 나오기 시작한 짐바브웨 가족이 있었는데, 직장 관계로 오타와로 이사하게 되었기에 지난 주일에 간증을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하길, 이 교회가 자기의 교회인 것을 처음 방문할 때부터 느낄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교우들이
따뜻하게 반겨주고 돌봐주었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이 교회는
내 교회다 라고 했었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헤어져도, 본인은
이 디모데교회를 홈처치로 여기고, 아이들은 줌으로 주일학교에 계속해서 참석할 예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Love creates community 를 또 한번 목격하게 되었던 간증이었습니다. 사랑이
흘러 넘쳐 go beyond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당장에 결과가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다. 허공에
외치는 것과 같고, 담벼락에 외치는 것 같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다.
사랑으로 심고, 사랑으로 돌보는 모든 것을, 반드시
하나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은, 교육 수준이나 지식 수준이 높거나, 힘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사랑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여러분들의 사역이나, 기도나, 섬김이나, 관계를
해 나갈 때에, 반드시 열매 맺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운지 10년뒤에
로마에 있는 감옥에서 이 서신서를 썼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그의 처지나
상황에 얽매이거나 주저 앉아 있지 않게 했습니다. 힘을 내십시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서로를 돌보는 일에 힘을 내십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