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4일 주일
성경: 고린도전서
15:1-11
설교: 헛되지
않는 삶
요즘처럼 죽음에 대해
매일 소식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뉴스를 보면 그날 죽은 숫자에 대해 듣습니다. 어제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2,854,735명의 사람들이 Covid-19 때문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죽은 그 사람들은 그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 하십시다. 그들은 누구의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아내였고, 아들이었고, 딸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거기에 286만개의 슬픈 사연과 이야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수 많은 슬픔,
눈물,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 Pandemic이 일어났을 때, 뉴스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부활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celebrate 하는 절기입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해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런 Pandemic 가운데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Celebrate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었는가? 그의 죽음은 그저 또 한 사람의 죽음에 끝나는 것인가? 예수님은 끔찍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불의가 그를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죄가 없는 사람을 가장 잔인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를 죄인으로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를
죽임으로 자기들은 맞고 그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인간의 악함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악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악한 인간의 힘 없는 희생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그를 살리셨다는 말은 하나님은 예수님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 주셨고,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기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 세상의 악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죽음이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조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는 죽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악함 때문에 그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생명을 가져 오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용서를 가져 왔고, 치유를 가져 왔고,
생명을 가져 왔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저 죽는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본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그의 희생, 그의 희생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수 있는 이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셨고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은 그의 의를 다시 세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기분에 따라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떻게 하다 보니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의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의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헛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좋은 일들, 그가 가르쳐 주셨던 놀라운 가르침들, 그의 열심,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가 치뤘던 그의 희생, 이 모든 것들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도 선한 것, 의로운 것, 단순히 올바른 것을 위해 살다가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죽임마저 당했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위해 싸웠고,
올바른 것을 위해 싸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해를 받았고,
무시를 당했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판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워했고 심지어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였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 우리의 모든 선한 일들, 우리의 희생,
이 모든 것들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 사도의 첫 편지, 그리고 오늘 부분적으로 우리가 읽은 15장의 주된 메시지 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헛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악이 이겼을 것입니다. 불의가 이겼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이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온 세상을 장악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헛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설교도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의
선한 일도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의 희생도 헛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헛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자기만을 위해 평생 산 사람과 자기를 희생하며 주님을 위해 산 사람의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활은 하나님의 정의 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그리고 또한 우리의 부활에 대해 바울 사도의 귀한 가르침이
그 안에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4번이나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린도전서 15:14)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 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5:16, 17)
그리고 끝에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맞습니다. 모든 것의 끝에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삶은 그렇게 만만치도 않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삶이 우리에게 늘 친절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 이런
Pandemic을 경험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에게 더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할 수
있습니다. 다룰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는 믿고 또한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의 끝이 죽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끝은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끝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때문에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때문에 삶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좋은 삶을 사십시오.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15장의 마지막에 바울 사도는 아주 Powerful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 주십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4-57)
그런 면에서 볼 때,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죽은 후에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봅니다. 부활은 그저 막연한 바람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현재의 삶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부활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확실한 증거를 남겨 놓습니다.
제자들의 삶이 바뀐 것도 바로 그들에게 이
부활의 영이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개인적인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이 그들을 온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부활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부활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영이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해온 선한 싸움을 계속
싸울 것입니다. Covid-19이 많은 것을 노출 시켰습니다.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진정한 신앙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의 끈질긴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왔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더욱더 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Covid-19이 또한 인간의 어두운 면, 추한 면도 보여 주었습니다. 토론토의 한 간호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I am a hero as a nurse but as a Chinese-Canadian,
I am reduced to a stupid Asian.”(나는 간호원으로써는 영웅이지만, 중국계 캐나다인으로써는 바보같은 아시안에 불과하다고 그의 경험을 말하였습니다.
몇일 전에 뉴욕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를 가고 있던 65세 된 필리핀 여인을 발로 배를 차고 넘어져 있는 여인을 발로 짓뭉개는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그 여인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Covid-19이 인간의 추한 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려움, 분노, 손가락질, 인종 차별,
이기심. 우리 주위에 있는 이런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두려움을 싸웁시다. 내 속에 있는 편견과 싸웁시다. 불의와 대항하여
싸웁시다. 우리의 욕심, 이기심,
교만과 싸웁시다. 우리 신앙의 게으름과 싸웁시다.
우리가 Pandemic 때문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모든 가정 마다 나름대로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Pandemic 기간 동안에 아이를 낳는 것도 힘들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도 힘듭니다. 모든 것을
online으로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것도 마음 아픕니다. 홀로 외로움을 이겨나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영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서로 서로 섬기며 열심히 주의 일을 하십시다.
우리의 노력이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시고 어둠에서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그것이 부활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