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7일
주일
성경:
사무엘상 3:1-11
설교:
귀를 열고 듣자
예수님은 종종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인 물을 포도주로 바꿀 때에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2:4)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참 생소하게 들립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때라고 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스케줄일 뿐입니다.
밥 먹을 때, 일할 때, 놀 때,
그리고 잠잘 때. 이것이 우리의 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 때라고 하는 것은 그저 스케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며 사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에게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하고, 주장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라는 말입니다. 아무 때나 하고자 하는 것을 해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은 나름대로의 정해진 코스가 있고 리듬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종종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 때가 오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때가 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2:23-25)
인생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서 기자가 한 말 아니었습니까?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전도서 3:2, 4)
너무 성급하게 조바심을 갖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애쓰기 보다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고, 거룩한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 때나, 스스로 결정하여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늘 지금이 무슨 때인지를 읽으셨습니다. 지킬 때인지
버릴 때인지, 찢을 때인지 꿰맬 때인지, 잠잠할 때인지 말할 때인지, 살펴 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사는 방법에 대해 귀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우리의 느낌, 우리의 지적인 판단,
우리의 가치관,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삶의 모든 것을 결정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또한 우리는 큰 부담을 갖고 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결정에 따라 삶이 아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을 가만히 보면 뭔가 더 큰 힘이 그의 삶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삶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끔 합니다. 내가 홀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삶과 무엇인가 나를 끌어 당기는 그
힘에 의해 살아가는 삶, 이 두가지의 삶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끌고 가는 삶과, 나를 끌어 당기는 어떤 힘에 의해 인도되는 삶. 이 둘이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삶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어떤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강을 건너는데 물쌀이 셉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놓치면 물쌀에 쓸려 내려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있는 힘을 다해 꼭 잡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깨닫는 것이 어머니의 강한 손이 자기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거기서 그는 평안을 찾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지만 내가 갖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이 나를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삶, 그 둘이 조화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끌어 당긴 그 큰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름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이 때라고 하는 것은 삶의
부름과 깊이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름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끌어
당기는 힘입니다. 부름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define 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름, 이것은 어떤 계산이나 이론으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아닙니다. 나보다 더 큰 힘이 나를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부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름의 삶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이렇게 고백을 하지요.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0-13)
사람들은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르나, 부름을 받은
우리는 그 강한 힘에 끌려 그것을 따라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 부름 이라고 하는 강한 힘에 끌려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줍니다. 그들이 좋아서,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결정으로 한 삶이 아니라, 자기보다 더 큰 힘이 그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택한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줍니다. 그 강한 힘이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으로 이끌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길을 떠났습니다.
그 강한 힘이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좋아서 그 삶을 선택한 것 아닙니다. 그는 처음에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큰 힘을 따라 나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그 부름을 깨닫고 자기의 그물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빛을 부르셨습니다. 그랬더니 빛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니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부르시니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삶에는 부름이 있습니다.
이 부름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를 향한 소리들이 있습니다. 어떤 소리는 크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들리지만 어떤 소리는 아주 작아 듣기가 힘들고
또 어떤 소리는 다른 소음에 묻혀서 듣지 못하는 소리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들을 우리의 인생 속에 담아 두셨습니다.물론, 우리를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 소리를 잘 들으셨습니다. 즉, 자기에게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잘 이해하고 또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 소리를 들으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우리에게 들렸던 음성들이 있었습니다. 그 음성들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 음성을 소홀히 여기고 듣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려워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 음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귀로 듣는 그런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들려지는
음성이었습니다. 실상, 우리는 많은 소리를 귀로 듣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듣습니다. 귀로 듣는 소리와 마음으로 듣는 소리를 잘 살펴 보십시오. 더 많은 것을 마음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소리들은 마음으로 들어온다는 것도 여러분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귀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는 조용한 곳을 찾아갑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지요.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복잡하여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묵상을 통하여 마음을 고요케 하고,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려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귀한 소리를 우리의 마음에 들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실 때에 여기의 귀는 육체적인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누구나 귀는 있지요 그러나 마음의 귀가 열려져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잘 살려면 이 마음의 귀가 좋아야 합니다. 듣는 귀가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것을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은 외부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또한 그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반응, 이 모든 것들이 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올해 첫 예배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입을 크게 열어 찬양 하라 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음의 귀를 열어 들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입니다. 내 말을 하기 위해 기도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기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염려를 기도로 돌리라 하였습니다. 이제 염려를 기도로 돌릴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놀라운 보물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매일 우리는 그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많이 말하려고 하기 보다는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사무엘이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4번째 부르실 때에 사무엘이 비로서 그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응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무엘상
3:1)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는데도 그는 그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한번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르십니다. 한번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한번 부르셔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은 또 부르십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을 세운 선지자입니다. 왕이 없을 때 그는 왕과도 같았습니다.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같은 존재였습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엔진과도 같은 다윗을
왕으로 세운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위대한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4번이나 부르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 들으십시다.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의 인생이 참 달라질 것입니다.
매일 듣는 시간을 따로 정하여서 듣는 훈련을
하십시오. 들으신 것을 노트북에 정리를 하여도 좋습니다. 아니면 그저 듣는 것을 즐기셔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기 자신의 문제나,
복잡한 생각 때문에, 아니면 게을러서, 아니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교만 때문에, 진정으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잘못된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지혜로운 사람으로써 올해는 살아갑시다. 두려우면 귀가 막힙니다.
욕심이 많으면 귀가 막힙니다. 교만이 우리를 사로잡으면 귀가 막힙니다. 복잡한 생각이 많으면 귀가 막힙니다. 고정관념에 잡혀 있으면 귀가 막힙니다.
귀를 열고 들으십시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우리 다같이 이 찬송을 한번 하십시다.